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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진영이 있는가? - 연속성 회복 2
대문이미지 출처 : pixabay에릭 매슈스 Eric Matthews는 『20세기 프랑스철학』에서 프랑스 지식인들이 대부분 좌파인 이유를 몇가지 들고 있다"나는 고발한다J'accuse"라는 제목의 글을 L'Aurore 기고하여,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전국적이고 동시에 세계적인 주목을 집중시켜, 국가와 군부의 부정부패를 고발하여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을 다했던 에밀 졸라와 문필가, 그리고 철학자들, 나치 점령기의 비시정권 하에서 레지스탕스 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 각종 시위의 선두에 시민들과 함께 섰던 사르트르, 푸코, 카뮈, 메를로-퐁티,이러한 역사적 경험에 의해 프랑스 지식인들은 기본적으로 기득권을 비판하고 약자와 노동자 편에 서는 흐름이 있어왔다 시위대 인파 속의 사르트르와 푸코 소련이 붕괴하고, 소련 및 동유럽에서 자행되던 집단 학살과 지식인-예술가들에 대한 감시와 미행 등이 드러나면서, 프랑스 철학의 지형에도 큰 지각변동이 있었다 알랭 바디우나 랑시에르, 프랑스인은 아니지만 라깡과 바디우에 많은 영향을 받은 지젝 등은 여전히 좌파를 자처하고 있지만, 푸코도 공산당을 탈퇴하고 스스로 좌파라 생각하지 않았으며, 들뢰즈는 공산당에 가입한 적이 없다지식인들을 뒤흔든 사건에는 물론 중국에서 벌어진 도 포함된다 근래에는 영국과 미국의 시민사회에서 주도하는 PC주의가 여러모로 생각할거리를 우리에게 제기한다 PC주의를 선도하는 지식인들은 주로 소수인종, 여성, 성소수자 등에 대한 차별, 혐오, 배제 등에 이의를 제기하고, 이러한 함축과 뉘앙스를 담은 언어 사용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정치적으로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도록 하는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 운동은 해당 언어의 사용을 포함하여 부적절하게 행동한 사람들을 선별하고, 결과적으로 낙인을 찍고, 최악의 경우에는 매장하는데까지 이르고 있다그래서인지 이러한 문화에 대하여 공산권의 문화혁명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까지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은 그들이 하는 운동이 약자를 위한 운동이며, 의 주도에 의한 자발적인 행동이지 공권력의 폭력이 아니라고 주장하겠지만, 공산권 국가들 역시 처음에는 노동자들을 위한 나라를 세우려는 의식으로부터 혁명에 이른 것이며, "어떤 계급도 어떤 다른 계급을 착취하지 않는" 이른바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한 운동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대로 문화의 특징과 정치적인 좌우를 둘러싼 역사가 있다 프랑스, 미국, 영국, 일본 등과는 다르지만 또 엇비슷하게 위와 같은 보편적인 문제들과 씨름한다 최근에는 젊은이들 사이에 무분별하게 퍼지는 "~노"로 끝나는 표현을 둘러싼 엎치락 뒤치락 논쟁이 있었다 "~노"라는 표현은 일베 집단문화이고 특정 대통령를 혐오하는 표현이므로 없어져야한다는 주장과, 이에 합세하여 어떤 문맥에서의 ~노는 정당한 사투리이고, 어떤 문맥에서의 ~노는 일베 표현이라는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던 정치인, 또, 이 기회를 놓칠세라 이러한 논의가 전형적인 좌파들의 갈라치기, 낙인찍기, 사상검증, 검열이라고 지적하면서 프레임을 곧바로 정치적 진영 싸움으로 변경해버리고, 그 프레임에서 유효한 위치를 점유하고자 하는 정치인 등이 있었다 아, 또, 이러한 반복적인 논의에 지쳐버린 다수 국민들도 있었음에 틀림없다 문제는 누가 올바른가, 누구 말이 옳은가가 아니다 그리고 특히 특정한 누가 실수를 했느냐, 제대로 개입했느냐하는 특정 개인의 문제도 아니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들뢰즈에게 소수, 소수자는 매우 중요한 긍정적 개념이다 그러나 그는 소수가 맹목적인 구호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경고를 했두었다 그것이 여성이든, 인종적 소수든, 성소수자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약자다, 우리는 소수자를 위하여 운동한다는 구호를 외치면서 세력을 규합하는 한, 그것은 위험한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 는 다른 것이다 그들이 누구이든, 누구를 위한 것이든, 그들이 다수major가 되려고 하는 한 이미 소수가 아닌 것이다 누군가가 차별받고, 어떤 아픔이 있고, 어떤 부조리가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던져진 하나의 이다 문제는 그 사회가 가진 개념들, 제도들 등의 역량으로 해결해나가야 하는 것이고, 문제와 해결의 과정은 끝이 없는 것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 진영을 나누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가 약자라는 프레임에 갇히고 이 대응관계를 영구 진리인 것처럼 생각하는 한 6억대 성과급을 요구하는 삼성전자 노조와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기사 한줄 써주지 않는 외로운 노동운동을 하는 소외받는 영역의 노동자들이 뒤섞이게 되고, 그 사이에서 대중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노동자에 공감하던 청년이 6억대 성과급을 요구하는 노조를 보면서 역시 좌파는 아니라는 식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바꿔버린다] 여성, 학생, 어린이, 아이를 약자로 둔 다음에 그들이 하는 모든 요구는 선이라고 대응시키고 이를 자동 암기해버리는 한, 선생님을 때리는 학생을 어떻게 다루어야할지 몰라 멘붕에 처하는 것이다 사진출처 : 미디어오늘 그 자체로 올바른 진영은 없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문제다 이것이 소위 차이의 문제인데, 우리는 들뢰즈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렇게 오래 궁금해하고 공부했으면서도 아직까지 동일성의 철학에, 진영주의에 갇혀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책은 읽지만 생각은 별개로 하고 행동은 또 그 생각과도 다른 분열된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닌가
2026.07.21
철학과
홍명보 현상
대문이미지 : 대한민국 축구팀 6월 25일, 남아공과 한국의 월드컵 예선경기가 치러진 이후, 우리나라는 전국민이 비슷한 이유로 깊이 상처받은 것 같다이번 경기는 우리가 수십 년 겪어온 고질적인 문제들이 곪아서 터져나온 흉물과도 같았다 차범근 전 대표팀 감독이 월드컵 예선경기전에 눈물이 고인채 무거운 마음을 억누르면서 그래도 우리팀을 응원해달라고 호소하는 쇼츠를 봤는데, 내 마음이 차가워서 그런지, 나는 오히려 경우의 수에 의해 32강에 진출할 가능성이 무산된 것이 올바른 결과이고 또 그렇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문제가 산적한데도 요행히 결과가 나오면 문제를 대면하는 시기만 늦어질 뿐이기 때문이다이제 이 문제를 가리키는 일반명사가 되어버린 현상,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지만, 어떤 문제들이 누적되고 겹치고 곪았는지 열거해보자 사진출처: 뉴시스 1. 끼리끼리 나눠먹고, 약속된대로 밀어주는 자리 1.1. 끼리끼리 수뇌부 운영 1.2. 비합리적 선수기용과 경기운영 - 특정 선수에 대한 이해못할 특혜성 기용, 세계적으로 인정된 선수 벤치에 앉혀두기2. 여론은 무시하고 조직의 기득권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된 사항 밀어부치기3. 감사 무용지물 4. 연구하지 않는 감독, 합리적이지 않은 전술 왜 그런가? 그들[리더쉽]은1. 축구에 진지하지 않다 - 만약 그들이 진지했다면, 우리나라의 가용자원을 가능한한 모두 물색하고, 가능한 가장 좋은 선수 기용과 배치를 고안하고, 전술들을 비교 분석하고, 현장상황에 맞춰 대응했을 것이다 전술과 노력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없어보였다 2.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 비전이 없다 - 만약 그들에게 미래 비전이 있다면, 리더그룹에서 키우는 선수들이 특혜를 받는 것 같고, 국민들이 보기에 실력있는 선수들이 배제되는 상황이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를 망가뜨릴 것이라는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3. 진정으로 이기고 싶은 생각이 없다 - 진정으로 이기고 싶다면 팀을 합리적으로 운영해야만 한다 그러나 국민의 분노는 그 운영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에 증폭된 것이다 왜 ?1. 기득권 유지 -그들은 자기들이 지금 누리는 기득권을 지키고, 대대손손 물려주는 것만이 최고의 관심사이다2. 국가기관의 무능 - 운영자금의 30프로가 세금으로 충당되는 상황에서 조직을 견제해야할 정부와 국가기관은 기득권자들끼리 서로 보호해주는 체계 덕분인지 제대로 감시하고 일을 바로잡지 못한다3. 대한민국 축구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안타까워하는 축구인은 소외되고, 권력에서 배제된다 4. 축구인이 배제되는 마당에 여론이 반영될 리가 없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나는 현상에서 원인으로 나아가는 연역적 사유의 과정을 나열해보려고 노력했다결과와 원인의 변별이 정확한 것인지는 자신이 없다 하지만 이 리스트들에서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대한민국 축구에 대한 비전"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축구 평론가들이 우리나라의 축구를 지금의 일본 축구와 비교하면서, 한때 우리나라보다 약했던 일본 축구가 지금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이 안정적이고 체계적이며 수준이 높다고 말하면서그들은 수십년전부터 이미 일본 축구에 대한 100년 계획을 세우고, 하나하나 실제로 이루어나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9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나와 비슷한 세대들은 축구나 야구나 우리가 일본을 자주 이겼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우리는 일본과 실력이 비슷하다고 생각하거나, 일본 선수들은 우리나라 선수들만큼의 투지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30-4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에서 개인기가 뛰어난 선수들은 제법 많아졌는데도 불구하고 팀으로서의 대한민국은 여전하거나 퇴보했다누가 그 책임을 져야할까? 이런 문제들이 하루아침에 불거진 것도 아니고, 우리가 이 문제들에 대해서 항의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정부가 감사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선수 개개인이 노력하지 않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남아공과의 경기를 보면서 마음이 그렇게도 무거운 것이 아니겠는가그리고 이 문제가 단지 축구계에만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우리는 아주 잘 알고 있지 않는가 나는 이런 종류의 문제가 우리나라 곳곳에서 크고 작은 공공기관과 사기업, 크고작은 조직, 크고작은 각종 모임, 협회 등에서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아래와 같달까? 온 국민이 쳐다보는 조직이 이와같이 운영되는데 다른 조직이야 어떨 것인가 바라건대 이번 일이 우리에게 100년을 내다보는 진지한 첫 걸음을 내딛게 되는 계기였으면 한다
2026.07.01
철학과
연속성을 회복하자 - 선거후기
계엄 이후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되기까지 개인적으로는 상당한 정신적 에너지를 썼던 바람에 나는 그 이후로 정치에 대해 거리를 두고 살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정치적인 지형은, 내 상태와는 별도로, 이번에도 무척이나 역동적으로 들끓었던 것 같다 게다가 90개 선거구에서 투표용지가 모자랐다고 하니, 여기저기에서 재선거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생겨나고, 각 대학마다 이와 관련한 대자보도 붙는 모양이다 많은 정치평론 전문가들이 각 문제를 둘러싼 다채로운 세부 사실들과 다각도의 해석들을 내놓을 것인 바, 나는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만을 최대한 간결하게 선거 후기로 남기고자 한다 선거관련 가장 자극적인 표는 아마 아래와 같은 표일 것이다 세대별, 직업별, 성별 투표 성향이나 결과에 대한 다양한 조사가 있지만 대체로 비슷하기 때문에 이 표만 두고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20-30대 남성과 60-70대는 소위 보수적인 투표 성향을 보이고, 40-50대와 20-30대의 여성은 소위 진보적인 투표성향을 보인다 이 지형을 두고 보수세력이 진보세력을 샌드위치처럼 감싸는 형국이라고도하고, 앞으로 10-20여년 후에는 사회의 허리 역할을 하는 세대가 보수화되어 결국 보수당이 유리할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정치공학적인 해석이므로 제쳐두자선거와 투표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20-30세대와 40-50세대의 거리를 잘 알고 있다 [물론 20-30의 여성은 또 다른데 이에 대해서는 후에 말하기로 하자]20-30 세대는 그 스스로 나이든 세대로부터 전혀 이해받고 있지 못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들은 60-70대를 틀딱이라고 혐오하고, 40대는 영포티라 조롱하며, 50대는 아마 꼰대로 부르는 것 같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접근은 다만 인구population수준에서의 접근이니 잠시 이해해주기 바란다]젊은 세대가 나이든 세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한 조사에서 그들은 나이든 세대를 끔찍하게 생각하거나 혐오한다고 말한바 있다고 한다 [정확한 조사 데이터를 발견하면 첨부하도록 하겠다]반대로, 40-50대에게 소위 mz 세대란 그들의 시대처럼 취직이 잘 되지 않아 힘들겠다는 점 외에는, 말이 안통하는 세대, 취직하고싶다면서 중소기업은 쳐다보지도 않고 좋은 곳에만 가려고하는 배부른 세대, 이해가 안가는 세대, 그래서 거의 괴물같이 느껴지는 세대로 간주되는 것 같다 이렇게 서로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싶지도 않아서 벽을 치는 관계는 이 외에도 많지만 이번에는 선거후기이므로 정치와 관련한 단절을 꼽아보겠다 정치인과 시민의 관계,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과 그들에게 우리의 권리를 일부 양도하기 위해 투표하는 사람들의 관계가 또한 그렇다 진보든 보수든 특정 정당 정치인들은 왜 특정 세대, 특정 지역 혹은 특정 직업군의 시민들이 그들을 지지하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시민들은 정치인들이 전혀 무능하며, 자신들의 뜻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분노한다 이들 사이도 매우 단절되어 있다 여기에서 나는 얼핏 너무 추상적으로 들릴 에 대해 말해보고싶다 위에 제시한 여러 관계들 사이에는 몰이해, 단절, 혐오, 분노, 배제, 불통, 비난, 선동, 맹목 등의 정서가 가세한다 단절과 혐오의 악순환과 상호강화가 최근 10여년간 우리나라의 의식과 문화를 지배해온 것 같다 각각으로 분할된 집단들은 스스로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면서 다른 집단들을 비난하고 혐오하는데, 사실 우리들은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20-30대는 40-50대가 키웠고, 40-50대는 60-70대가 키웠다정당들은 매 선거마다 새로운 인물을 영입하여 당을 쇄신한다고 한다그 정당들에 수혈되는 인물들은 그 이전까지는 비정치인이었다누군가 정치를 하고, 누군가가 하필이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되기까지 주목받는 자리에 갔다는 것은 우리 모두, 5000만명에 이르는 우리 모두의 의식과 수준과 문화와 심리 상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어떤 정치집단이 무능하다면 우리의 수준이 그들이 무능하다고 우리가 느끼는 그 수준 이상이 아닌 것이다 물론 한 두 사람, 몇몇 사람, 몇십명, 몇백명이 그 정치인들보다 유능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정치라는 하나의 기술arete에 집중된 능력으로 환산하자면 아직 대단히 유능하지 않은 것이다 또 어떤 정치집단이 파렴치하고 이기적이라면 그들을 대표로 내세운 상당한 수의 국민이 이미 파렴치하고 이기적인 것이다 그리고 국민 5000만은 단일한 인물 -심지어 한 사람조차 그 속은 복잡한데 -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욕망과 우리의 상태는 정말 다양하고 복잡한 것이다 정치인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의 한계 limit 지점들이다 그들을 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욕하는 것이다그래서 욕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그들이 그 정도인 것을 두고 "나는 아닌데 너는 왜 그러니"라는 입장을 갖는 것은 다소 부조리하다는 것이다AI 시대인데, 나는 내 설명을 표현해보기 위해 다음과 같은 여러 다이어그램을 그려보았다 우리가 서로를 생각하는 것은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데, 사실은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이것은 들뢰즈가 존재를 동일성 기반 존재론으로부터 차이존재론으로 혁신하면서 주장했던 것들 중 하나이다 이를테면 그는 존재를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이것은 칸트의 구분과 다르다칸트는 실재를 규정할 수 없다면서 존재의 질서에서 제외했고, 오로지 인과율로 설명할 수 있는 규정가능한 세계만을 다루기로 하였는데, 이런 식으로 규정성의 이상을 신에게 할당하고, 미규정은 자아에, 규정가능을 세계에 할당한 후, 이들을 위와 같이 서로 넘어다닐 수 없도록 만들어 둔 것이 근대의식이다 그러나 존재는 dx★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침투해있다20대의 모습에는 30대부터 70대까지의 모든 모습들이 침투해있고,40대의 모습에는 50대부터 70대의 모습, 20대와 30대의 모습들이 침투해있다 그런데도 서로 저들은 내 모습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소간 착각이다 서로는 서로에 의해 설명이 가능하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세대를 구분하고 정치인과 투표권자를 구분한 후에, 내 편에 선을 할당하고 상대편에 악을 할당하여, 상대를 비난하고 혐오하고 분노하고 배제하는 것은 우리가 존재에 대한 감각을 많이 상실했기 때문인 것 같다 연속성을 회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 연속성이란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 것인가? 다음 글에 이 내용을 다루기로 하겠다 ★ dx는 미분기호로서, 신칸트주의자들, 살로몬 마이몬과 헤르만 코헨과 같은 사람들은 물자체와 현상, 감성과 지성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데 기반한 칸트의 선험성transcendental이 현실을 복사한 것이지 현실을 생산하는 원리를 밝힌 것이 아니라고 비판하였으며, 미분기호dx를 미규정-규정가능-규정에 적용할 수 있다고 보고 이를 통해 칸트의 선험철학을 보완하고자했는데, 들뢰즈가 이를 차이의 이념적 종합에 대한 영감으로 삼았다. 들뢰즈는 본인의 철학을 선험적 경험론empirisme transcendental이라고 부른바 있는데, 여기에는 일정부분 이 신칸트주의자들의 문제의식이 반영된 것이다. 즉 차이dx는 칸트의 철학에서와는 달리 미규정-규정-규정가능의 세 계기를 모두 아우르는 이념적 종합작용을 한다. 과학적 세계관에 친숙한 우리는 대개 눈에 보이는 것들의 인과관계가 전부라고 생각하는데, 이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생산을 담당하는 것들을 함축하고 있다(implication)는 것이다.
2026.06.09
철학과
올드 스쿨
대문이미지 : 한화이글스 유니폼, 출처-무신사뉴스룸 보도자료최근 프로야구 한화이글스에는 커다란 우여곡절이 있었다시즌 첫 두 게임을 시원하게 이기고 승승장구할 것 같던 팀이 2주전에 9등까지 추락했고, 팬들은 한화 사옥 앞에서 감독을 경질하라는 시위까지 하게 된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 경기운영 이번 시즌 10년 300억 계약을 체결한 노시환 4번 타자가 전혀 공을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1할대 타율, 리그 최다 연속 삼진, 리그 최다 연속 무출루 등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갱신하는 노시환 선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은 요지부동, 노시환 선수를 계속 4번타자로 올렸다 또, 마무리 보직을 받아 팀의 큰 신뢰를 받고 있는 김서현 투수그는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던지지 못하고, 병적으로 포볼을 내주기를 반복하여급기야 포볼로 밀어내기 점수를 허용하고, 주자 만루를 만들고, 거기다 안타나 홈런을 맞아 대량실점을 반복하는데도,팀은 요지부동, 김서현 선수를 계속 마무리로 올렸다반대로, 다른 선수투수들은 잘 던지는 중에 돌연 알 수 없는 이유로 교체되거나, 공격수의 경우에도 이를테면 1번으로 나와 거의 4할에 가까운 타율을 기록하던 이원석 선수를 돌연 하위타선으로 돌리고 1번으로 누가 가장 적합할지 찾는다는 명목으로 계속 다른 선수들을 돌려가며 기용했으며, 심지어 4번으로 잘 맞추지 못하는 노시환 선수가 1번으로 기용된 일도 있다 1번은 테이블세터라 불리는 자리로 어떤 방식으로든 출루하는 것이 중요한데 지금 컨디션이 바닥이라 삼진이 잦은 홈런타자를 1번에 기용하는 것은 어떤 전략일까?2. 믿음의 야구 어디에 문제가 있는 걸까 검색하다보니 자주 눈에 띄는 단어는, 믿음의 야구, 올드 스쿨이었다처음에는 이게 뭐지 싶었다 경기운영을 저렇게 하는 것이 믿음의 야구라고?, 올드 스쿨?, 옛날 방식?, 그때는 경기를 저렇게 했다고? ???위와 같은 경기운영을 믿음과 관련지워 가설을 세워보니 대략 다음과 같은 그림이 나왔다 "어떤 기대 받는 특정 선수가 있을 때, 그 선수가 커리어 중반에 슬럼프를 겪거나 성적이 좋지 않아도 계속 그를 믿어준다" 이런 것이 아마 믿음의 야구였을 것 같다그러나 믿음이라는 실천적 행위를 이런 식으로 운영하는 것은 곤란하다 3. 믿음의 잘못된 실천 위와 같은 식의 믿음으로 운영된 경기는 첫째, 그 선수 본인에게도 좋지 않다 믿음의 대상이 되는 선수들은 이미 고액 연봉과 커다란 신뢰를 받느라 부담이 크다그런데 영점이 맞지 않고 배트에 공을 맞추지 못하는 상태가 오래 지속되어 지표에 의해서도 불명예스럽게 된 상황이라면 그 부담이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게다가 주자가 루 상에 나가 있는데 본인 때문에 리듬이 자꾸 끊기고, 주자 만루 기회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일이 잦으니 다른 선수들 볼 면목도 없을 것이다둘째, 팀에게 좋지 않다아무리 프로야구라 하더라도 실력에 따라 비교 불가능한 연봉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초고액 연봉자가 성과를 내지 못하는데도 계속 기용되는 것은 부당해보일 수 있어 다른 선수들의 승리욕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팀 경기는 개인기를 자랑하는 것이 충분한 승리 요건이 아니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특별히 주어지는 지나친 기회로 리듬이 자꾸 끊기게 되는 상황은 팀 전체의 사기를 꺾고, 그의 슬럼프는 전염될 수 있다 결국 모두가 슬럼프를 겪는다셋째, 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믿어주는 몇몇 특별한 선수에게만 주어지는 기회가 그 팀의 성적을 갉아먹는데도 불구하고 코칭스탭이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은 결국 팬들 덕분에 운영되는 프로, 상업 경기에서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팬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분노가 전혀 고려되지 않는 몇몇 선수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미덕이 아니다 아름다움 타격의 순간, 이미지 출처 -KB의 생각4. 허위의식과 자기기만 믿는다는 것은 사실 철학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그러나 그러한 중요성을 깊이 고려하지 않더라도, 이와 같은 경기 운영은 믿음과는 상관이 없어 보인다그것은 여건이 되든 안되든 맨땅에 헤딩하고, 될때까지 닥치고 밀어부치는, 진정 구시대의 유물일 뿐, 진정한 믿음은 그러한 곳에 있지 않다어떤 선수를 믿는다면, 혹은 팀의 구성원들과 팬들을 믿는다면, 촉망받는 선수가 슬럼프에 빠지는 경우, 왜 타격이 안되고 볼을 던지지 못하는지 점검하고 교정하도록 시간을 주고, 다시 돌아와 점검할 수 있도록 하는 운영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 당사자가 부담스럽든 불명예스럽든 상관없이, 다른 이들이 박탈감과 허탈감을 느끼든 상관없이,그로 인해 팀의 리듬이 깨지고 우울감이 팀을 지배하든 말든 상관없이, 팬들이 분노하고 이해하지 못해거나 말거나 그저 믿음으로 밀고 나가는 것은, 그 누군가의 혹은 어떤 일군의 책임자들의 체면이나 의욕이나 근성 또는 승부욕을 위해, 관련된 사람들을 갈아넣는 것에 불과하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제는 어떤 특수한 집단의, 혹은 특별한 개인의, 더 나아가 국가의 성공을 위해, 개인들을 갈아 넣는 일은 없어야 한다그것은 그야말로 후진적이고 구시대적인 문화의 유물이다 위와 같은 경기운영에 올드스쿨이니 믿음의 야구니 하는 현학적인 단어를 쓴다는 것도 지적인 게으름이고 현실에 대한 외면이며 허위의식이자 자기기만이다너무 오래 허위의식의 공기 속에 살아왔더니 이제 이러한 허위의식을 나는 더이상 견디기 어렵고, 지겹기까지 하다단 하나의 성공 서사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갈아넣는 시대는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도록 보내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2026.05.21
철학과
가난
대문이미지 : 백석시인의 사진 관련 이미지나 테마 검색을 한 적이 없는 내가 본 정도면, 아마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음과 유사한 콘텐츠들을 봤다고 봐도 될 것 같다.[아래 이미지들은 인스타에서 캡쳐함]비슷한 제목은 차고넘친다. , , 등등. 두번째 이미지의 내용은 최근 처음 보는 종류여서 좀 충격이었다. 4. 행정과 법만 열심히 공부한다 > 가난과 문학과 철학에 대한 적나라한 혐오를 보여주는 위의 두 콘텐츠는 우리가 얼마나 오래 많은 상처를 입고 안고 또 젋은세대에게 물려주었는지 알 수 있다젊은이들은 그 상처의 독을 이런 식으로 배출하고, 자신들은 후대에 상처를 물려주기 싫어서, 그리고 이런 원망의 소리 듣기 싫어서, 아마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과생인 것이 죄송할 정도이니, 우리나라는 과연 국민을, 아니, 우리는 과연 우리 자신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 것인가? 돈이 되는 것이 선이고 돈이 안되는 것은 악이며, 그것이 아무런 매개도 없이 사람에 대한 비난으로 직접 이어지는 곳, 유망한 흐름에 몰빵하고, 나머지는 버리는 곳, 그렇게해서 도달한 선진국이 우리들의 꿈이었던가? 가난과 문학과 철학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혐오하고 버리고 적대시하는 나라, 그런 나라가 선진국인가? 서랍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통영에서 산 백석시인의 사진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그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를 읽어보았다.좁다란 방의 흰 바람 벽을 바라보면서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싶은 이 시인은 자신의 가난한 늙은 어머니와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과 자신의 쓸쓸한 얼굴을 차례로 떠올리다가 다음과 같은 글자들이 지나가는 것을 본다."-나는 이 세상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허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하다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애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잼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철학과 문학이 영원히 기억되는 것은 그것이 보편적인 울림을 가졌기 때문이다.이러한 보편적인 감수성이 짓밟히는 곳에 생명이 왕성하게 자랄 수 없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2026.03.05
철학과
좌파 Gauche
설연휴를 빌어 나는 오랜 친구를 만났다그는 지나치게 열심히 일한 나머지 뇌경색 증세가 시작되어 두개골을 연 대수술을 해야했고 그 덕에 많은 사람들의 병문안을 받았다고 한다그 중 서너명의 초등 동창들이 와서 무슨 연유인지 정치 이야기를 하게 됐고,ADB(Asian Development Bank)에서 오래 일하느라 한국에 머무른 시간이 거의 없는 내 친구가 "나는 좌파야"라고 말하자 분위기는 이상해졌고, "얘는 외국에 있어서 한국상황을 잘 몰라서 그래"라고 두둔하는 친구와 그와는 달리 격한 대립 상황에 이르는 친구도 있었는데, 어쨌든 내 친구는 이 모든 상황이 정말 낯설었다고 나에게 털어놓았다그는 그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한국에 있었든 없었든, 한국 상황이 어떻든 상관없이 사회적으로 특정하게 우월한 지위와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오로지 내 능력에 근거한 것만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내가 가진 우월한 지위와 권리와 재산을 그렇지 않은 사람과 나눠가져야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좌파라는거야"저렇게 멋진 말을 하다니.. ㅎㅎ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마음 깊이 쓰라렸다 그래, 이럴때가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리 작다고 하더라도 하기는 해두어야한다 그리하여 나는 연휴에서 돌아와 라는 깔끔한 제목의 간단한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앞서 나는 Everyday Philosophy 에 좌우라는 정치적 포지션은 허구라는 취지의 글을 썼는데, 그것은 우리나라의 정치적 의식 상황이 지나치게 당파적이었기 때문에, 좌우를 어떤 특정 입장으로 고정시키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오늘 하려는 말은 당파성이 아니라 순수한 정치 철학적 의미에서의 좌파와 우파의 의미라고 하겠다 들뢰즈는 만약 자신이 철학을 하지 않았다면 judisprudence[법학, 법률학/ 판례]를 했을 거라고 말하면서 좌파를 마르크스와 정당의 이름을 넣지 않고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좌파, 그것은 법률의 창조creation du droit"라고 말이다 [이 말은 그의 인터뷰 동영상 abecedaire 중 G편, gauche에 나오는 말이다]그는 프랑스에서 있었던 한 소송의 사례를 들어 법률을 창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고자 했다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예전에는 택시에서 담배를 피웠고, 택시기사가 이를 저지하자 택시에서 담배피울 자유를 누리고 싶었던 승객들이 이를 소송에 부쳤다당시에는 놀랍게도 택시기사가 패소했는데, 그 이유는 승객이 택시를 타는 순간, 그 승객은 마치 집을 전세내듯이 택시를 전세내는 것이라는 논거?때문이었다 즉, 세를 놓은 집주인은 세든 사람에게 내 집에서 담배피우지 말라는 말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 판결의 취지였던 것이다 지금이라면 같은 소송이라도 다른 판결이 나올 것이다 지금은 택시를 공공서비스로 생각하기 때문에, 승객은 결코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다는 연역을 할 것이 분명한 것이다 법이란 이렇듯 어떻게 판결하느냐 하는 문제, 판례와 관련한 문제이고, 그것은 바로 삶, 상황과 상황의 만남의 문제라는 것이다우리는 같은 법조항을 두고도 이렇게 저렇게 적용해간다 그리고 그 적용은 변하며 새로이 창조된다 법을 창조하는 것, 권리를 창조하는 것, 그것이 좌파라는 것이다 [이 모든 관점은 흄에 대한 그의 첫 책에 나와있다]이것은 우파가 기존의 것, 전통을 지키는 입장이며좌파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전복하는?, 변경시키는 입장이라는, 아주아주 고전적인 철학적 정의를 혁신한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좌파와 우파라는 단어가 지나친 피로감을 준다 이럴 때 우리는 본질로, 철학으로, 근본으로 돌아가서 원래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당파성을 떠나서, 사건사고를 떠나서 말이다 그래야 쓸데없는 에너지를 써가면서 서로의 감정을 상해가면서 얼굴을 붉히고 슬픔에 잠기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P.S. 좌파에 대한 들뢰즈의 설명에는 첨부한 사진 자막에 나온 것처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것은 사실 법학judisprudence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한, -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정치라는 개념은 이미 스피노자의 것이기도 하거니와 - 그리고 자유를 지키는 것이 우파의 입장이라면,이때부터 이미 우리는 좌파와 우파를 나누는 것조차 진정한 의미의 정치와 법철학의 관점에서 큰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고 할 것이다
2026.02.20
철학과
사람과 향수
대문이미지 from 영화 지난주말 나이가 60이 넘은 한 가수가 여전히 전성기때의 목소리를 유지하고 게다가 멋진 퍼포먼스까지 곁들여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다가 문득 사람은 향수와 비슷한 데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가수는 멋쩍어하는 듯한 모습으로 노래를 시작하지만 막상 노래에 진입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노래를 완전히 지배하고 무대와 관객을 장악했는데, 또 노래가 끝이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살짝 부끄러워하는 듯한 표정을 남기는 것이다.이 모습은 마치 향수를 뿌리자마자 우리가 맡게 되는 탑 노트가 있는가 하면, 탑 노트가 사라질 즈음에 향의 본체가 무대를 장악하고,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면 베이스 노트가 잔향으로 살며시 드러나는 것과 같지 않은가. 우리는 조향이 잘 된 향수를 사랑하듯이, 같이 있을 때와는 또 다른 잔향을 남기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향수같이 느껴지는 것도 아닐 뿐더러, 살다 보면 삶에 치이고 지쳐서 자신의 향을 잊어버리거나, 또는 이러저러한 가정과 사회의 힘에 의해 억누르거나, 어떤 경우는 자신의 모습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자신을 감추고 싶어하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의 향을 숨기고 바꾸고 남이 원하는 모습에 맞추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누구인지 더 이상 찾기 어려워지는 지경에 이르기도 하는 것 같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동명 소설 을 원작으로 한 영화 포스터. 감독 톰 튀크베어. 향수와 잔향의 이야기를 프로이트와 함께 풀어보자.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문구를 남겼는데, 이 문구는 완전히 다른 해석이 가능해서 논쟁적이고 매우 유명하다.“Wo Es war, soll Ich werden”- 지그문트 프로이트 이 문구는 영어로 번역하면 “Where It was, I must become” 정도가 된다고 한다. 나는 독일어를 잘 못하기 때문에 werden의 뉘앙스를 become이 잘 받아내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뉘앙스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미국의 자아심리학Ego Psychology 계열에서 이 문구는 “Where Id was, Ego shall be”로, 말하자면 에고가 이드의 자리에 가서 충동을 통제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 모양이다. 그러나 라깡은 이에 반대하여 이 문구를 그 반대방향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그것이 있었던 자리로 내가 되어가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서양 사람이 표현하려는 것을 우리말로 번역하려니 문법도 좀 이상해지고 모든 것이 어색하다. 어떻든 라깡은 우리가 가진 그것It>을 감추고 누르고 통제할게 아니라, 오히려 거꾸로 그것이 드러나도록 자아의 통제를 조금 느슨하게 하고, 드러나는 그 힘에 다가가서 그것이 되도록 애써야 한다고 말하려고 했던 것이다.그가 말했던 이 그것>을 향수의 노트들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떻겠는가. 우리는 모두 어떤 방식으로 조향된 향수와 같은 존재들이다.어떤 한 개인은 하나의 힘으로는 절대로 완전히 규정되지 않으며 여러 힘들이 어우러지고 일렁이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이루는 그 노트들을, 그것이 어떻게 조향되어있는지를 찾아가보아야 한다. 그 노트들은 나의 것인데도 나는 내가 어떻게 조향되어 있는지도 잘 모르는 것이다. 내가 긴장하고 버티고 맞추느라고 응어리져있던 힘들이 드러나고 그 힘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알아간다면 그때 비로소 우리는 각 존재들마다 가진 매력을 찾고 또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자크 라깡 (1901-1981)
2026.01.05
철학과
The winner takes it all
89년 12월 학력고사를 본 며칠 후 나는 1년간 같은 반이었으면서 말 한번 주고받지 않았던 같은 학원 같은 반 아이들과 함께 처음 만나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노래도 부르는 자리를 가졌다. 그때 처음 젓가락 마이크를 잡았던 한 남학생이 부른 노래를 나는 아직까지 기억한다. 그것은 전설적인 그룹 아바의 The winner takes it all이었는데, 그 노래를 당시 몰랐던 나는 그 제목 자체로 내심 충격을 받았다. 입시에 실패하고 모인 재수생들 사이에서 Winner takes it all이라는 노래를 부르다니... 노랫말이 그런 종류가 아니어서 다시 한번 놀랐던 기억도 함께 보존되어 있다. 그 노래는 애처롭고 아름다우며, 결국 남녀사이에는 Winner가 모든 것을 가져간다는 이치에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쓰라림까지 담고 있지만, 열 아홉살에 처음 저 노래 제목을 들었을 때는 무척 혼란스러웠다. 치열한 경쟁의 한가운데에서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간다는 잔인한 현실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르는 어리둥절했던 나를 상징하는 노래다. 피어스 브로스넌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나는 메릴 스트립의 모습, 그때로부터 지금은 35년이상이 지나가고 있지만, 우리의 세상은 달라진게 없다. 아니 오히려 지금 우리는 경쟁을 불가피한 것으로 순순히 받아들이고, 서로를 평가하는 지표를 가능한 한 세밀하게 다듬으려고 하며, 그 지표가 더욱 세밀할 수록 더욱 공정한 평가가 되기라도 한다는 듯이 생각하고 있다. 그런 한에서 우리는 모두 라이프니츠주의자이다. 또한 어떤 알고리즘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인스타, 쇼츠 등 짤막짤막한 동영상과 이미지들은 무수한 순위 콘텐츠들을 유통시킨다. 사치 브랜드 탑티어, 시계브랜드 계급도, 몇 년도 학력고사 전국1등 근황, IQ 190 천재의 충격적인 현재 모습,... 등, 어디나 낯부끄럽고 어지럽고 매캐한 콘텐츠들이 범람한다. 내가 나의 세계를 어떻게 가꾸고 있는지, 나에게 중요한 사람들과 어떤 것들을 교류하고 있는지, 우리에게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리로 나의 욕망을 흐르도록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세계의 사유의 최전선이 우리에게 알려주려고 하는 것이라는 점을 어떻게 하면 전달할 수 있을까?열아홉에 들었던 아바의 노래만큼 강렬한 충격을 준 문장으로 이 단상을 마무리해 보고싶다.멜빌은 『모비딕』에서 이런 문장을 남겼다. “어떤 물고기도 바다 표면에서 수영할 수 있다. 하지만 5000미터 그리고 그 이상 깊이 내려가기 위해서는 거대한 고래가 되어야 한다... 사유의 잠수부들은 세계가 시작했을 때부터 눈에 핏발이 서도록[깊이 잠수했다가] 바다의 표면으로 되돌아오곤 했다.N'importe quel poisson peut nager près de la surface, mais il faut une grande baleine pourdessendre à cinq milles et davantage... Les plongeurs de la pensée sont revenus à la surface les yeux injectés de sang depuis commencement du monde.” 우리는 각자 자신의 몸으로, 근육과 관절의 정교한 합과 긴장을 짜릿하게 느끼면서, 내 몸이 허용해주는 만큼 세상의 물 깊이 들어가서, 보고 느끼고 어우러지다가, 숨이 차면 다시 표면으로 되돌아오면 된다. 각자의 세계에서 각자의 전투를 치르는데 구경꾼들은 쉽사리 등수를 매기고 자로 재고 측정을 한다. 그러나 경쟁과 기준과 측정에 우리의 삶을 내어주지 말자. 이데아와 신과 주체의 자리를 꿰 찬 지표들에게 우리의 삶을 판단할 권리를 내어주지 말자. 우리는 모두 각자의 주사위를 던지고, 내가 쥔 패로 세상을 살아가면 그 뿐이다. 이 게임에는 모두가 승자이며, 잃는 자는 없다.https://youtu.be/gNyyi6D8whY맘마미아에서 메릴 스트립이 부르는 The winner takes it all - ABBAI don't wanna talk About the things we've gone through Though it's hurting me Now it's history I've played all my cards And that's what you've done too Nothing more to say No more ace to play The winner takes it allthe winner takes it allBuilding me a home Thinking I'd be strong there But I was a fool Playing by the rules The winner takes it all The loser standing small Beside the victory That's her destiny I was in your arms Thinking I belonged there I figured it made sense Building me a fence the winner takes it allThe gods may throw a dice Their minds as cold as ice And someone way down here Loses someone dear The winner takes it all The loser has to fall It's simple and it's plain Why should I complain But tell me does she kiss Like I used to kiss you Does it feel the same When she calls your name N the winner takes it allSomewhere deep inside You must know I miss you But what can I say Rules must be obeyedThe judges will decide The likes of me abide Spectators of the show Always staying low The game is on again A lover or a friend A big thing or a small The winner takes it all I don't wanna talk If it makes you feel sad And I understand You've come to shake my hand I apologize If it makes you feel bad Seeing me so tense No self confidence But you see
2025.12.15
철학과
[초대글] 나이가 주는 숙제 앞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선택들
★ 경상국립대학교 정치외교학 철학 복수전공 졸업생 대문이미지는 다음 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https://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800&key=20180703.22018000717우리는 살면서 그 나이에 맞는 숙제를 풀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숙제란 생애 주기에서 요구되는 정형화된 과업(e.g. 입학, 취업, 결혼)이 아니다. 각자의 삶에서 다가오는 숙제는 그 삶의 맥락에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백 명의 삶이 있다면 백 개의 서로 다른 숙제가 있다. 누구도 같은 시험지를 받지 않는다.'나의 삶에서 출제된, 나이가 주는 숙제'란 (1)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미래에서 다가오는 시간의 반복 속에서 (2)삶의 기존 질서를 깨뜨리고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여는 사건이다. (1) 들뢰즈에 따르면, 시간은 단순히 선형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다. 시간은 반복 속에서 항상 차이를 만들어내며 새롭게 구성되는 미래를 향한다. 즉, 우리는 일정한 리듬 속에서 어떤 문제와 마주하게 되고, 이는 삶의 구조를 이루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이러한 반복 속에서 찾아오는 특정한 사건은 삶의 기존 질서를 깨뜨리는 계기가 된다.(2) 사건은 기존의 사고 체계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여는 전환점이다. 들뢰즈에게 사건은 기존의 의미 구조를 와해하고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돌출적인 순간이다. 사건으로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숙제는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다가오며,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삶의 방향을 만들어낸다.때문에 우리는 숙제를 어떤 태도로 마주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1) 미루거나 회피하기 (2) 직면하고 해결하기각각의 선택은 삶에서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이미지 from 오마이뉴스페이스북(1) 미루거나 회피하기가장 쉬워보이는 선택은 숙제를 피하거나 회피하는 것이다. 들뢰즈가 말하는 '희극(comedy)'는 문제를 흘려보내며 책임을 유예하는 태도-"이렇게 살아도 아무 문제 없었는데 머리 아프게 생각하기 싫어"-를 말한다. 아무렴 인생이 점수를 매겨서 합불의 당락을 가르는 것도 아니니 이러한 태도가 삶에서 당장 큰 문제를 불러오는 것 같지는 않다.문제는 숙제에 복리가 붙을 때 발생한다. 10-20대에 해야 할 고민을 미루면 30대에 더 큰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20대에 혼자만의 시간을 기쁜 고독(solitude)으로 보내지 못하고 피상적 대화와 소모적 만남으로 채워 버렸다면, 홀로 있는 순간은 각각의 모든 순간이 외로움과의 분투가 된다. 각자의 삶으로 바쁜 30대의 친구들은 그 시간을 양껏 충족시켜 줄 수 없다. 때문에 '외롭다'는 납작한 이유로, 휴일을 할애해 줄 수 있으면 그 누구라도 족한 연애가 간편한 해답이 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혼자가 편하다는 이유로 타인과의 관계를 위해 들여야 할 노력과 시행착오를 흘려보내면 상대와 거리감을 재단하는 데 미숙해져 적절치 못하게 선을 넘는 말을 하고, 눈을 마주치며 나누는 최소한의 사회적 대화도 원활하게 하기 힘든 30대가 된다. 어리숙한 10-20대는 연민의 대상이 되어 때때로 좋은 어른, 또래의 지도편달을 받지만 어리숙한 30대에게는 세상이 그런 정성을 기울이지 않는다.*연애하는 게 왜 복리가 붙은 숙제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는데 30대의 연애는 손쉽게 결혼으로 이어져서 그렇다. 결혼은 가역적이되 선택의 순간에는 그 가역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 배타적 관계로 시작했지만 많은 관계가 따라붙는다는 점 등으로 인해 연애보다 더 큰 이자가 따른다.숙제에는 복리가 붙는다. 0.2, 0.3%의 이자가 붙던 비교적 어린 시절의 숙제는 어느 기점으로 복리의 마법으로 20%의 고금리 사채 빚이 된다. 미루다 보면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어질 때까지 숙제가 쌓인다. 미루고 회피하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부담을 덜어주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희극적 태도의 반복이 차이를 만들지 못할 때 우리는 누적된 숙제를 맞닥뜨려야만 한다. 반복이 단순히 습관적으로 재현된다면 미뤄둔 숙제는 점차 누적되며 어느 순간 선택의 여지를 상실하게 만든다. (2) 직면하고 해결하기불청객인 숙제는 기존의 사유 방식(희극적 태도)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때때로 고통스럽다. 미루고 회피하더라도 언젠가는 이를 해결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이때 우리는 ‘중간휴지’ 상태에 놓이게 된다. 중간휴지는 기존의 사고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때를 말한다. 이전에는 익숙한 논리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기존 틀로는 도저히 풀리지 않는 난관에 봉착한 상태다. 사건은 언제나 불쑥 찾아오고, 기존의 질서를 깨뜨린다.기존의 삶의 질서가 무너지는 비극(tragedy)는 우리에게 새로운 사유와 태도를 강요한다. 평소 우리가 ‘나는 생각한다’고 믿는 사유는 사실 기계적이고 습관적인 사유에 가깝다. 익숙한 틀 안에서 반복적으로 사고할 뿐, 실제로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러나 예기치 않았던 사건이 우리 삶으로 뚜벅뚜벅 걸어와 우리를 '비자발적 사유' 속으로 밀어 넣을 때, 기존 사고방식이 깨지면서 새로운 사유의 전환이 가능해진다. 이 순간이 바로 중간휴지가 드라마로 전환되는 순간이다.들뢰즈에게 드라마(drama)는 단순한 사건의 해결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사유와 존재 방식을 창조하는 과정이다. 비극을 계기로 사고의 패턴 자체를 바꾸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즉, 중간휴지는 일종의 공백이면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창조적 전환의 가능성을 여는 순간이 된다.고통스러운 순간이 때로는 사유의 도약이 될 수 있다. '보상 없는 고통은 없다.' 비극은 기존의 사유 방식이 한계에 도달하는 순간이며, 새로운 의미와 변화를 창출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드라마적 태도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사건을 숙제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방식으로 삶을 창조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끈다. 중간휴지와 비극의 순간을 지나 과거를 돌아보면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아는 산산조각이 나고 과거는 그 자체로 우스운 희극(comedy)이 된다. 중간휴지를 지난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내가 된다.내 삶의 주인공 되기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영화에서 어떤 인물이 '주인공'인지 구분할 때 그가 변화를 겪는지를 기준으로 삼곤 한다고 말했다. 이 변화는 기존의 자신을 벗어나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주인공'을 변화하게 만드는, 변화할 수밖에 없는 사건(숙제)은 그를 비자발적 사유로 밀어넣어 새로운 인물이 되게 한다. 숙제가 그를 변화하게 하지 못했다면 주인공이 될 수 없다.결국, 삶의 숙제 앞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각자 인생의 서사에서 주인공이 될지, 자신의 삶에서조차 주변인으로 살아갈지는 숙제를 마주하는 태도에 달렸다. 그리하여 그 풀이가 어떤 '내'가 될지를 결정한다. 변화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멈추고(중간휴지), 고통의 순간(비극)을 지날 때 비로소 삶이 드라마가 된다.
2025.12.01
철학과
정년 연장에 대면한 두 가지 풍경
대문이미지 신화 연합뉴스 제공Bloquons tous !모든 것을 멈추자! 이는 올해 9월 초 프랑스를 뒤덮은 구호이다 당시 지인이 프랑스를 거쳐 유럽 전역을 여행하고 있을 때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애를 태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난 10여년 사이 우리나라는 평화적이면서도 강력한 시위로 전 세계를 주목시켰지만, 사실 시위의 원조는 누가 뭐래도 프랑스를 꼽아줘야한다 그들의 시위는 우리와는 달리 과격하고 폭력적이다 18세기와 19세기 프랑스대혁명과 빅토르 위고의 에 묘사되고 있는 혁명 정신을 아직까지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위하기 위해 그들은 일단 주변 사물들을 모아 담을 쌓아 바리케이드를 만들고 불을 붙이고 부순다 1830년 외젠 들라크루아 , 루브르 박물관 소장 9월 초, 프랑스 국민들이 그렇게 분노한 이유는 무엇인가?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 정부가 2026년 예산안에서공공지출 삭감(예: 사회복지·공공서비스 축소) 계획을 밝혔기 때문이다도로·철도가 차단되었고, 총파업이 예고되었으며, 주요 거점 봉쇄 등이 계획되고 실행되었다정부는 전국에 경찰병력을 8 만명 이상 투입하여 대응했다고 한다 프랑스가 들끓어 뉴스가 된 것이 엊그제 같았는데 또 한번 홍역을 앓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2년 전에도 마크롱 정부가 의회 표결도 없이 전격적으로 시행시킨 정년연장 조치에 전국적으로 들끓었던 전력이 있었다 프랑스에는 정부가 의회 표결 없이 정부안을 바로 실행시킬 수 있는 헌법적 권리가 있다고 한다그런 권리가 어떻게 가능하지? 라고 생각할 법 하지만, 이 권리에는 "의회가 불신임안(motion of non confidence)을 통과시키면 정부는 물러나야 하고, 법안은 무효가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그리하여 당시 프랑스의 법정 은퇴 연령은 62세에서 64세로 연장되었고, 완전한 연금을 받기 위해 필요한 근무기간이 늘어났다 당시 프랑스 사회는 이 개혁으로 노동강도가 높은 노동자의 혜택이 줄어든다고 우려했고,아무리 헌법에 명시된 정부의 권리라 해도 의회의 의결없는 급격한 법안 시행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했으며,더 나아가 국민들은 정부가 왜 프랑스의 복지모델을 바꾸고자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 다음은 이 글을 쓰고나서 알게된 이 문제와 관련한 최신 뉴스입니다 마크롱 정부는 연금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 법정 은퇴 연령(정년)을 기존 만 62세에서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만 64세로 연장하는 내용을 추진했고, 법안은 2023년 4월 헌법위원회의 합헌 결정을 받고 그해 9월부터 시행되었으나, 2025년 11월 12일(현지시각), 프랑스 하원은 정부가 제출한 연금 개혁 일시 중단안을 가결했다.이에 따라 정년 연장을 포함한 연금 개혁안은 차기 대통령 선거 이후인 2028년 1월까지 시행이 유예아마도 이 결정은 2년만에 긴축예산안에 대한 반대여론이 거센 상황에서 야당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한 돌파구로서, 마크롱 정부가 정국 교착 상태를 해결하고 야당의 요구를 일부 수용한 결과로 보인다. 연금 개혁안은 시행 당시부터 프랑스 국민들과 노동조합의 거센 반발과 대규모 시위를 불러왔으며, 국민 70% 이상이 반대하는 등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그런데 2025년 지금 우리나라가 23년에 프랑스가 겪었던 그 정년 연장을 대면하게 되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801537개월째 답보중인 정년연장 논의...풀리지 않는 세가지 쟁점 [출처:중앙일보] 정년연장을 둘러싼 우리나라의 풍경은 프랑스와 사뭇 다르다 사뭇 다른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다르다고 해야할 것 같다 우리나라는 노동계가 정년연장을 주장하고 있는 형편이다 왜냐하면 연금수령이 65세로 설계되어 있는 반면 법정은퇴 연령은 62세로 되어 있어 연금수급 불일치가 생기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업입장이 난감하다 기업으로서는 아무래도 신입사원보다는 임금부담이 더하고 연령으로 인해 생산성이 그만큼 보장되지 않은 인력을 계속 고용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 같다이를 바라보는 청년들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정년이 연장되는 노동자의 자리가 바로 자기의 자리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만큼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는 생각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지 않을까? 게다가 노후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아서 하루라도 더 일해야하는 당사자들의 마음도 불편하고 부담스럽기는 매한가지일 것이다그들이라고해서,분노한 프랑스 국민들처럼 왜 우리보고 더 일하라고 하느냐, 우리의 노년을 보장하라고 외치고 싶지 않겠는가? 그들은 이미 노년이고 지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해야 살 수 있기 때문에 일을 더 하겠다는 것이니 말이다 사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정부가 정년연장안을 연내입법하겠다는 입장을 아주 좋은 뉴스인 것처럼 발표하는 것을 듣고 어리둥절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정년연장이 좋은 뉴스라고? 그리고나서 나는 정년을 65세로 연장해야한다는 국내여론이 거의 80프로에 육박한다는 기사를 확인하고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 62세 은퇴, 65세 연금 수령의 불일치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이 정년연장 밖에 없었을까? 우리나라는,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들은 유럽과 같은 복지를 한껏 누린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정년이 62세으로 단축되는 것이 선물이 아니었던 것처럼. 65세로 연장되는 것 역시 선물일 수는 없다 정년 65세로의 개정을 앞둔 우리나라는, 왜 우리의 복지모델을 바꾸려하는가 라는 의문조차 가질 수도, 분노할 수도 없으며, 더욱이 반길수만도 없는 매우 모호한 풍경 속에 놓여 있는 것 같다
202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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