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와 내감의 동요
이무영 | 전남대 철학과 박사과정
데카르트가 중세 스콜라 철학을 뒤엎고 근대 철학의 청사진을 제시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그가 즐겨 사용하는 ‘학교’(école)와 ‘강단’(université), ‘철학자들’(philosophes) 같은 용어는 대부분의 문맥에서 매우 비판적인 어조를 숨기지 않는다. 그런데 데카르트 연구의 역사에서 이런 특징이 강하게 부각되었던 것은 다름 아닌 19세기 프랑스 철학계였고, 20세기 초 『데카르트 작품집』 비판본(AT판)의 출간과 더불어 질송(É. Gilson)에게서 개시된 일련의 역사적 연구(『데카르트-스콜라 철학 용어 색인』, 『데카르트 체계의 형성에서 중세 사상의 역할 연구』)는 데카르트 철학의 고유성을 조명하는 과정에서 데카르트의 철학사적 쇄신에 대한 정확한 기준을 가늠하려는 세부적 논의를 촉발시켰다. 오늘날 데카르트의 독자는 중세와 근대라는 막대한 시간차를 임의로 넘나드는 거대 담론을 지나 다소 미시적인 주제나 개념이 데카르트를 거치면서 겪기 마련인 역사적 변모를 한층 가까운 시야에서 관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금 조망하려는 것은 데카르트의 감각 이론이다. 보통 감각은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을 비롯한 다섯 가지 외감(sensus externus)을 통칭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데카르트 시대로 되돌아 간다면, 후기 중세 이래 이들 외감과 다른 몇 가지 감각이 별도로 주장되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당대 가장 널리 읽혔다고 알려진 ‘강단 철학’ 교과서 성 바오로의 유스타치우스(Eustachius a Sancto Paulo)의 『철학 대전』(Summa philosophiae)에 따르면,
실로 실재와 본성에 있어 공통 감각(sensus commnuis), 환상력(phantasia), 판별력(aestimativa), 기억력(memoria)이라는 서로 상이한 네 가지 내감(sensus internus)이 있다는 것이 모두가 동의하는 견해이다.(‘Physica’, p.3, t.3, d.3, q.1, p.394)
저자는 외감과 더불어 ‘내감’의 존재가 해당 시기 여전히 광범위하게 인정받았다고 보고한다. 그것의 철학사적 기원은 12세기 이베리아 반도에서 확산된 아랍 학문의 번역 운동이며,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와 아비첸나의 철학 저술 번역은 각각 원전과 주해의 역할을 맡으면서 서유럽에 내감의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이때부터 내감의 개수와 기능에 대한 다수의 논쟁이 자연스레 뒤따랐으며, 거의 아리스토텔레스를 해석하면서 아비첸나를 수용하는 철학자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입장들과 논증들로 귀결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이른바 ‘근대 철학자’ 데카르트가 사백 년에 가까운 이러한 철학사의 지층을 과연 간과할 수 있었는지 묻는 것은 데카르트 철학의 역사적 지평을 이해하려는 목적에서 본다면 단순한 물음이 아니다.
물론 지난 연구의 결과물을 지렛대로 삼아 확인할 수 있는 몇 가지 핵심적 단서들이 있다. 이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감의 수를 극단적으로 줄이는 환원의 경향이다. 앞선 인용문의 저자 유스타치우스를 포함해 당대 스콜라 철학의 거장 수아레즈(F. Suarez) 모두 내감이 단 하나일 뿐이라는 입장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치일 것이다. 말하자면 유스타치우스가 포착 능력(facultas apprehensiva) 하나만 내감으로 간주하고 능력이 떠맡는 상이한 직분(munium)에 따라 이름만 다를 뿐이라고 주장하는 한편, 수아레즈는 내감은 개념적 차이(ratio)가 있을 뿐 능력(potentia)으로서는 하나라는 유사한 입장을 전개한 것이다. 놀랍게도 초창기 데카르트 역시 비슷한 논증을 제시했다. 데카르트는 하나이자 동일한 힘이 내감이 떠맡는 여러 기능(functio)에 따라 상이하게 불린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하나이자 동일한 힘[=인식하는 힘(vis cognoscens)]이 상상과 더불어 공통 감각을 향하면 ‘보다’나 ‘만지다’ 등으로 불리고, 오로지 다른 모양을 갖추는 듯한 상상만 향하면 ‘상기하다’로 불리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상상을 향하면 ‘상상하다’나 ‘포착하다’로 불리고, 마지막으로 혼자 작용하면 ‘이해하다’로 불린다. (…) 그러므로 동일한 힘이 상이한 기능(functio)에 따라 순수 지성, 상상, 기억, 감각으로 불리는 것이다.(『정신지도규칙』, AT X, 415-416)
하지만 여기서 데카르트가 겪는 혼동은 단순하지 않다. 그는 하나의 동일한 힘이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당대에 공유된 한 가지 착상에 도달하지만, ‘내감’이라는 대표적 용어 자체를 거론하지 않으면서 상상, 기억, 공통 감각이 힘의 상이한 기능의 실현에 앞서 실재적으로 존재한다는 전제를 은연 중에 가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논리적 모순에 빠지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데카르트가 내감을 두고 벌이는 동요는 연대기적으로 본다면 데카르트 철학 전체를 관통한다. 일례로 1620년대 후반 데카르트는 공통 감각을 가리켜 “신체의 어떤 다른 부위”(alia quaedam corporis pars)라 부르는 동시에 상상과 환상을 동등하게 취급하지만(phantasia vel imaginatio, AT X, 414) 1630년 한 편지에서는 다시 상상과 별도로 환상(fantasie)을 직접 거론하는가 하면(AT I, 133), 1637년 출간된 『굴절광학』에서는 공통 감각을 즉각 ‘능력’(faculté)과 일치시키면서도(cette faculté qu'ils appellent le sens commun[=공통 감각이라 불리는 이 능력], AT VI, 109) 1641년 『성찰』에서 ‘상상하는 능력’으로 달리 규정한다(sensus communis, ut vocant, id est potentia imaginatrice, AT VII, 32)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동요는 외견상 내감의 철학적 기초가 점차 무력화되는 시대적 경향을 스콜라 철학 못지 않게 데카르트 자신도 함께 경험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여기에 머물러 살펴볼 몇 가지 쟁점들은 여전히 남는다.
쟁점⓵ 내감은 능력인가?
유스타치우스와 수아레즈는 내감이 여러 이름을 가질 수 있더라도 적어도 하나의 동일한 능력(facultas/potentia)의 여러 기능적 파생물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나아가 데카르트 당대 스콜라 철학은 대체로 내감을 비롯한 감각이 ‘영혼’의 능력이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해, 감각은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랐던 일련의 페리파토스 전통에서 ‘감각혼’(anima sensitiva) 내지는 ‘동물혼’(anima animalis)의 능력이었다. 예를 들어, 식물혼(anima vegetabilis)만 갖는 여러 식물은 동물과 달리 감각을 갖지 못한 채 양분 능력(nutritiva)이나 성장 능력(augmentativa)을 갖는 반면, 식물혼과 감각혼은 물론 이성혼(anima rationalis)도 갖는 인간은 양분 능력과 감각 능력에 더해 이해 능력(intellectiva)도 갖는다. 그런데 앞서 보았듯 데카르트는 내감과 능력을 단적으로 일치시키길 주저한다. 그가 내감 중 하나인 공통 감각을 어떤 능력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시기는 앞서 보았듯 데카르트 생애 초기도 아닌 후기로 간주할 수 있는 1637년 이후의 일이며, 사실상 데카르트가 능력이라는 말로 뜻하는 것이 과연 무엇이고 더욱이 이런 의미에서 (비록 내감은 아니라 하더라도) 공통 감각, 상상, 기억을 어떻게 저마다 독립된 능력들로 간주할 수 있었는지를 다룬 상세한 해명은 남아 있지 않다.
쟁점⓶ 내감의 재정의
이런 상황은 데카르트가 1644년 『철학의 원리』에서 제시한 내감에 대한 자신만의 (반아리스토텔레스적) 설명을 내보이면서 거듭 악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 감각이 다양한 것은 무엇보다 바로 이들 감각에 속하는 신경들(nervus)이 다양하다는 점과 다음으로는 각각의 신경에서 일어나는 운동이 다양하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각각의 신경이 나머지와 구분된 각각의 감각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일곱 가지 감각이 두드러진 차별점을 나타낸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 중 두 개는 내감(sensus internus) 에 속하고, 다섯 개는 외감(sensus externus)에 속한다. 물론 위, 식도, 목구멍을 비롯해 자연적 욕망을 채우도록 정해진 여타의 내적 부위들로 뻗어 있는 신경은 ‘자연적 욕구’라 불리는 내감 중 하나를 만든다. 그러나 심장과 폐로 뻗어 있는 작은 신경은 아주 작다고는 하지만 별도의 내감을 만드는 바, 영혼의 모든 격동 즉 열정, 그리고 기쁨, 슬픔, 사랑, 미움 등의 감정(affectus)은 이 내감에 존립한다.(AT VIII-1, 316)
데카르트의 개념적 쇄신은 신체의 신경에 입각해 감각을 재편하는 방식에서 비롯된다. 무엇보다도 내감에 할애된 신경은 소재지와 기능에 있어 두 종류로 세분된다. 그 중 하나는 주로 양분 섭취라는 자연적 욕망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 신체 부위와 관련되는데,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용법에서 식물혼의 양분 능력에 대체로 대응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다른 하나의 내감은 훗날 ‘정념’으로 통칭되는 다양한 감정들의 신체적 기원에 해당하는 심장과 흉부의 미세 신경이다. 데카르트는 공통 감각, 상상, 기억을 과연 이러한 정념의 근원지로서의 내감이라는 의미로 변환시킨 것인가? 데카르트가 동물을 가리켜 영혼이 없는 기계라고 주장했다는 것을 떠올려 본다면, 이들 미세 신경이 기존에 내감이 떠맡고 있던 역할을 모두 망라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쉽게 깨닫게 된다.
쟁점⓷ 데카르트 의학과 내감
데카르트는 1630년부터 스스로 “작은 형이상학 논고”(un petit Traité de Métaphysique, AT II, 182)라 불렀던 것을 집필할 기획을 가졌다. 이 논고는 이후 어디에서도 원본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기획으로 남았지만, 여러 연구자들로부터 『성찰』의 전신으로 예상되고 있다. 데카르트 철학의 시간적 순서로 보자면, 해당 논고는 무엇보다 『정신지도규칙』의 포기와 새로운 자연학을 제안하는 『세계』의 집필 사이를 매개하는 가교로 이해된다. 다시 말해, 데카르트는 스콜라 철학을 넘어선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자연학과 동시에 새로운 형이상학을 한꺼번에 고안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 그가 구상한 새로운 자연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적 자연학(physica)과도 거리가 있고, 뉴턴부터 시작된 고전 물리학(physique classique)과도 차이가 있다.
저는 『세계』에서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좀 더 인간에 대해 말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인간의 모든 주요 기능을 설명하는 일에 착수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미 생명에 속하는 기능들을 기술했습니다. 고기의 소화, 맥박의 간격, 양분의 분포 등을 비롯해 오감과 같은 것 말입니다. 저는 이제 상상과 기억 등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설명하고자 상이한 동물들의 머리를 해부합니다.(AT I, 263)
이렇듯 1632년의 편지는 자연학적 측면에서 데카르트가 구상한 영혼론의 진화를 보여준다. 기존의 자연학이 움직이는 존재자(ens mobilis)의 운동, 장소, 시간 등을 중점적으로 탐구했다면, 데카르트는 주로 형이상학적 관점에 따라 해석되었던 인간의 영혼을 자연학 안에 포함시켜 다루려는 놀랄 만한 의도를 피력한다. 물론 데카르트가 여기서 ‘인간 영혼’을 다루겠다고 명백하게 선언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편지에서 열거한 인간의 다양한 ‘기능’은 그 자체로 아리스토텔레스적 영혼론의 구분과 대략 합치한다. 즉 데카르트의 기획은 식물혼과 동물혼에 저마다 귀속되던 일련의 능력들을 ‘해부학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사실상 당대 학교와 강단의 철학계가 병행하지 못했던 제3의 학문, 즉 의학의 도입을 통해 독자적으로 이루어진다.
거칠게 상기한 쟁점들 모두는 철학사라는 제한된 관점을 고집하는 경우 몇 가지 형이상학적 핵심 개념들의 (재)전유라는 주제로만 위축될 위험성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보듯이 데카르트의 철학을 움직이고 나아가 스콜라 철학의 대륙을 흔들었던 것은 단지 형이상학이나 인식론 같은 사후의 조망들로는 더 이상 간단히 접근할 수 없다. 더욱이 스콜라 철학과 데카르트 철학의 관계는 일방향적이라기 보다는 쌍방향적이다. 그것은 곧 아직 개방되지 않은 새로운 관점에서 비롯된 무한한 연구의 여지를 포함한다. 여기서 다루어진 것은 내감이라는 단 하나의 개념에 불과하지만, 이 개념을 포착하고 일신하려 시도했던 다수의 무명 철학자는 도래할 철학의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길 준비를 이미 시작했다.
이무영 | 전남대 철학과에서 데카르트 철학을 중심으로 서유럽 후기 중세와 초기 근대를 연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