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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매슈스 Eric Matthews는 『20세기 프랑스철학』에서 프랑스 지식인들이 대부분 좌파인 이유를 몇가지 들고 있다
"나는 고발한다J'accuse"라는 제목의 글을 L'Aurore 기고하여,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전국적이고 동시에 세계적인 주목을 집중시켜,
국가와 군부의 부정부패를 고발하여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을 다했던 에밀 졸라와 문필가, 그리고 철학자들,
나치 점령기의 비시정권 하에서 레지스탕스 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 각종 시위의 선두에 시민들과 함께 섰던 사르트르, 푸코, 카뮈, 메를로-퐁티,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 의해 프랑스 지식인들은 기본적으로 기득권을 비판하고 약자와 노동자 편에 서는 흐름이 있어왔다

시위대 인파 속의 사르트르와 푸코
소련이 붕괴하고, 소련 및 동유럽에서 자행되던 집단 학살과 지식인-예술가들에 대한 감시와 미행 등이 드러나면서,
프랑스 철학의 지형에도 큰 지각변동이 있었다 알랭 바디우나 랑시에르, 프랑스인은 아니지만 라깡과 바디우에 많은 영향을 받은 지젝 등은
여전히 좌파를 자처하고 있지만, 푸코도 공산당을 탈퇴하고 스스로 좌파라 생각하지 않았으며, 들뢰즈는 공산당에 가입한 적이 없다
지식인들을 뒤흔든 사건에는 물론 중국에서 벌어진 <문화혁명>도 포함된다
근래에는 영국과 미국의 시민사회에서 주도하는 PC주의가 여러모로 생각할거리를 우리에게 제기한다
PC주의를 선도하는 지식인들은 주로 소수인종, 여성, 성소수자 등에 대한 차별, 혐오, 배제 등에 이의를 제기하고,
이러한 함축과 뉘앙스를 담은 언어 사용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정치적으로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도록 하는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 운동은 해당 언어의 사용을 포함하여 부적절하게 행동한 사람들을 선별하고, 결과적으로 낙인을 찍고, 최악의 경우에는 매장하는데까지 이르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러한 문화에 대하여 공산권의 문화혁명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까지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은 그들이 하는 운동이 <명백히> 약자를 위한 운동이며, <시민>의 주도에 의한 자발적인 행동이지 공권력의 폭력이 아니라고 주장하겠지만,
공산권 국가들 역시 처음에는 노동자들을 위한 나라를 세우려는 의식으로부터 혁명에 이른 것이며, "어떤 계급도 어떤 다른 계급을 착취하지 않는" 이른바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한 운동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대로 문화의 특징과 정치적인 좌우를 둘러싼 역사가 있다
프랑스, 미국, 영국, 일본 등과는 다르지만 또 엇비슷하게 위와 같은 보편적인 문제들과 씨름한다
최근에는 젊은이들 사이에 무분별하게 퍼지는 "~노"로 끝나는 표현을 둘러싼 엎치락 뒤치락 논쟁이 있었다
"~노"라는 표현은 일베 집단문화이고 특정 대통령를 혐오하는 표현이므로 없어져야한다는 주장과,
이에 합세하여 어떤 문맥에서의 ~노는 정당한 사투리이고, 어떤 문맥에서의 ~노는 일베 표현이라는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던 정치인,
또, 이 기회를 놓칠세라 이러한 논의가 전형적인 좌파들의 갈라치기, 낙인찍기, 사상검증, 검열이라고 지적하면서 프레임을 곧바로 정치적 진영 싸움으로 변경해버리고, 그 프레임에서 유효한 위치를 점유하고자 하는 정치인 등이 있었다
아, 또, 이러한 반복적인 논의에 지쳐버린 다수 국민들도 있었음에 틀림없다
문제는 누가 올바른가, 누구 말이 옳은가가 아니다
그리고 특히 특정한 누가 실수를 했느냐, 제대로 개입했느냐하는 특정 개인의 문제도 아니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진영주의>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들뢰즈에게 소수, 소수자는 매우 중요한 긍정적 개념이다 그러나 그는 소수가 맹목적인 구호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경고를 했두었다
그것이 여성이든, 인종적 소수든, 성소수자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약자다, 우리는 소수자를 위하여 운동한다는 구호를 외치면서 세력을 규합하는 한,
그것은 위험한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수자들의 진영/집단>과 <소수자-되기>는 다른 것이다
그들이 누구이든, 누구를 위한 것이든, 그들이 다수major가 되려고 하는 한 이미 소수가 아닌 것이다
누군가가 차별받고, 어떤 아픔이 있고, 어떤 부조리가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던져진 하나의 <문제>이다
문제는 그 사회가 가진 개념들, 제도들 등의 역량으로 해결해나가야 하는 것이고,
문제와 해결의 과정은 끝이 없는 것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 진영을 나누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가 약자라는 프레임에 갇히고 이 대응관계를 영구 진리인 것처럼 생각하는 한
6억대 성과급을 요구하는 삼성전자 노조와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기사 한줄 써주지 않는 외로운 노동운동을 하는 소외받는 영역의 노동자들이 뒤섞이게 되고,
그 사이에서 대중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노동자에 공감하던 청년이 6억대 성과급을 요구하는 노조를 보면서 역시 좌파는 아니라는 식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바꿔버린다]
여성, 학생, 어린이, 아이를 약자로 둔 다음에 그들이 하는 모든 요구는 선이라고 대응시키고 이를 자동 암기해버리는 한,
선생님을 때리는 학생을 어떻게 다루어야할지 몰라 멘붕에 처하는 것이다

사진출처 : 미디어오늘
그 자체로 올바른 진영은 없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문제다
이것이 소위 차이의 문제인데, 우리는 들뢰즈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렇게 오래 궁금해하고 공부했으면서도
아직까지 동일성의 철학에, 진영주의에 갇혀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책은 읽지만 생각은 별개로 하고 행동은 또 그 생각과도 다른 분열된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