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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passion과 정서[감응]affect/ion, 그리고 감정emotion

  • 작성자 철학과
  • 등록일 2025.01.27
  • 조회수 288
  • 작성자 신지영

대문이미지 : 123RF, by sanek13744


우리말로 된 철학 텍스트를 보다보면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 저자가 그 단어의 함축을 잘 변별하지 않고 쓰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개념이 바로 이번 주제인 정념과 정서 등에 관한 것들이다 

더구나 학부 학생들의 경우에는 어떤 개념의 뜻을 모를때 우리말 사전을 찾아보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철학을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잘못된 길로 우리의 생각을 인도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내가 가르치는 영역은 서양철학이라서 그들이 처음 쓰기 시작한 그들의 단어가 원래의 단어이고,

우리말로 접하는 것은 중간에 번역자가 매개가 되어 원어에 대하여 그에 합당한 우리말을 고른 것이다

그러므로 이해가 안되는 개념에 부딪치면 일단 원어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 급선무이다


정념이라고 번역되는 원어는 우리나라에서 대부분 passion이다 

passion은 passive와 같은 어근을 가지고 있는 단어로서 수동성을 담보로 한다

이 개념은 주로 데카르트에게서 등장하며, 그는 정념이 외부 대상으로부터 대면한 주체에게 수동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보았다

정념이 명료한 인식에 도움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데카르트는 정념을 유발한 외부 대상을 인식함으로써 

즉, 정념의 원인을 인식함으로써 이 정념으로부터 해방되고자했다 

그런 함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passion은 주로 사랑에 빠졌을 때의 상태, 

주체가 이 정념을 통제할 수 없는 상태임을 말할 때, 그때 주로 사용된다


그러나 같은 시대 스피노자는 passion이 아닌 affection이라는 다른 개념을 사용했다

affection은 정말 번역자마다, 번역대상이 되는 철학자마다 다르게 번역되어 아주 어려운 단어가 되어버렸다

간단히 말하자면  passion 은 외부 대상에 의해 주관에 발생하는 수동적인 것인 반면, 

affect 는 외부 대상을 경험하는 주관이 그런 경험을 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 느끼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자발적이며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다 

베르그손도 affection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그가 보기에 affection은 대상과 주관의 거리가 0이 되어버리는 순간, 

주관이 지각의 대상이 되는 순간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이때 통증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대상에 대한 주관의 거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고통을 피하려는 무익한 노력이라고 하기도 했다 [즉 베르그손에게도 affection은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다]

베르그손은  affection에 대해 자세히 검토하지 않기 때문에 통증이나 고통douleur정도만 이야기하고 마무리해서 

이것을 정서라고 말하기도 참 애매히고 그의 주된 관심이 신경생리학에 많이 가 있으니 베르그손에게서는 

affection을 감응이라고 번역하는 것도 적절해보인다 그러나 passion과 다른 것은 분명하다

스피노자는 <에티카>[홈피에서 제공하는 폰트에 책 표시기호가 없음에 양해 부탁드립니다] 3장 정서에 대하여-에서 

48개의 affection을 다루기 때문에 이것은 충분히 정서라고 말할 만 하다 

또한 정신분석에서도 이와 같은 개념을 함께 하며 이 분야에서는 affection을 정서 혹은 정동이라 번역한다 


emotion을 규정하는 것은 어렵다

이 개념을 쓰는 철학자가 그 나름의 개념 규정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passion도 아니고 affection도 아니면서 emotion을 쓴다면 위의 두 개념과는 다른 그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passion이 수동정념이고 affection이 적극적인 정동, 정서, 혹은 감응[영혼의 움직임]이라면, 

emotion은 우리의 언어에 적응된 감정을 말할 확률이 높다

우리가 잘 알고 있고, 언어로 존재하는 감정들 그것이 emotion일 것이다

affection과는 어떻게 다른가? 사실 affection이라고 하여 스피노자는 48가지의 정서들을 나열해두고 있지만 

affection은 영혼의 다양한 움직임으로서, 언어 이전의 것이고, 언어로 고착된 특정 감정으로 단언하기 직전의 

어떤 미분적인 것들이다

그래서 affection을 감지한다는 것은 세계를 대면하는 내가 세계에 대해서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지를 미세하게 관찰하는 것이다 

그것은 듬성듬성 무 자르듯이 슬프다 기쁘다 즐겁다 등의 뭉툭한 감정으로는 묘사되지 않는 내 영혼의 움직임에 귀기울이는 일이다 

affection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그러므로 내가 나 자신의 변화에 예민해진다는 것이며, 

그로부터 나 뿐만 아니라 나에게 그러한 변화를 촉발한 외부에 대한 세심한 시선을 가진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