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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재성의 평면

  • 작성자 철학과
  • 등록일 2025.12.15
  • 조회수 244
  • 작성자 신지영

대문이미지 : 쌍곡기하학의 위구 이미지 


근래에 들뢰즈를 열심히 읽고 공부하는 학부생으로부터 

내재성의 평면이라는 것은 차이 흐름의 절단면이냐,

혹은 차이의 효과이냐는 질문을 들었다 

들뢰즈에 진입할 때 내재성의 평면이라는 말을 통해 도달할 법한 생각이다 

내재성의 평면이 설명하기 참 까다롭고 또 전달하기 참 어렵다 

우선 들뢰즈 본인이 내재성의 평면과 관련하여 언급해둔 가장 자세한 텍스트를 참고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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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각주에 나와있는 것처럼 짧은 텍스트로 출판되었다가 나중에 <디알로그>에 편집되었으며, 우리말로는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

509쪽에 실려있다. 


이 텍스트는 우선 <선험적인 장champs transcendental>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지만 이것이 곧 내재성의 평면으로 이어지므로 

선험적인 장이 무엇인지부터 이해해보도록 하자

아마 들뢰즈는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하고싶었던 것 같다

그 자신의 철학을 스스로 선험적인 경험론empirisme transcendental이라고 부르기도 했던 것처럼,

그리고 그의 첫 저서가 흄과 경험주의에 바쳐졌고, 

경험주의의 오류는 경험을 너무 비좁해 제한했다는 점에 있다고 했던 데 따라서, 

혹시 이 평면 혹은 장이 경험 그 자체를 말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을까? 

그런 관점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일단 유보적으로라도 우리는 우리의 경험 그 자체 → 어쩌면 그것이 내재성의 평면이나 선험적인 장과 가장 가까울 수도 있겠다


그런데 여기에서 들뢰즈는  이 평면이 대상을 말하는 것도 아니요, 주체에 속한 것도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

그것이 경험과는 분명히 구분된다고 못 박는다

여기서 확인하고 넘어갈 점은, 들뢰즈가 말하는 이 평면 → 말하자면 사유의 누메나noumena가 

플라톤과 같은 어떤 객관성도 아니고, 칸트가 말하는 것 같은 어떤 주관성도 아니라는 것이다 

칸트는 이 평면을 주관에 귀속시킴으로써 내재성의 평면을 왜곡하고, 

그것을 인간적인 경험을 복사하는 것으로 격하시켰다고 본다 

이 지점이 바로 들뢰즈를 말할 때 항상 나오는 표현들, <주관도 객관도 없는>이라는 표현이 근거하는 지점이다 

그러면서 들뢰즈는 이 평면이 자아가 배제된 의식의 질적인 지속이라고 말한다(509쪽, 위의 첫페이지) 

물론 뒤이어 이때의 의식은 사실적인 의식이 아니라 권리상의 의식이라고 말한다(위의 세번째 페이지)

(이러한 구분을 더 이해하고 싶다면 대학원에 들어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사실적 의식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의미에서, 

자기의식이 없기 때문에 이 장은 바로 내재성의 평면이라고 말한다 (세번째 페이지) 

즉, 그 평면에는 자기의식을 갖춘 주체가 아직 없다는 뜻이다

자의식을 갖춘 주체가 없는 곳에는 아직 대상도 출현하지 않은 것이다

즉, 또 다시 말해서, 내재성의 평면은 아직 주체에 의해서나 대상에 의해서나 아직 어떠한 규정도 

초월적인 방식으로는 분배되지 않은 상태이고, 

그렇다고해서 아무런 분화도 없는, 규정성과 상호규정이 없는 <아름다운 영혼>의 상태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이미 이러저러한 세계와 주체의 규정과 기준으로는 끝내 소진시킬수도, 

끝끝내 전부 규정해낼 수도 없는 것으로서, 

언제나 새로운 것을 생산하는 차이와 반복의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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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세개의 축으로 파란색 덩어리를 표시하려고 한다면, 

저 축들과 좌표, 변수들은 덩어리에 대해서 초월해있다고 말하면 된다

대문 이미지로 올린 쌍곡선기학의 위구에는 그 구 자체에 위도와 경도와 같은 

좌표들이 몸에 붙어 그려져 있는데, 이 좌표들이 말하자면 권리상의 의식으로서 

사실의 차원에서는 실현되지 않는 의식이다 

저 위구가 표현되어 있는 상태를 말하자면 선험적인 장이라고 말하면 좋을 것이고, 

저 좌표들이 사실상의 의식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저 장은 내재성의 평면이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transcendental이 초월적 혹은 초월론적이라고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개념들의 지평을 두고 보자면 그것을 초월이라는 단어를 넣어 번역한다는 것이 내 마음에서는 너무 어려운 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