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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인 것과 특이성의 관계

  • 작성자 철학과
  • 등록일 2026.07.22
  • 조회수 62
  • 작성자 신지영

대문이미지 : 스피노자 


<보편적인 것>에 대한 강의를 하다보면, 들뢰즈와 현대프랑스철학을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지, 

들뢰즈가 <보편성>을 부정한 적이 없다는 데 대해 사람들이 무척 낯설어하는 것을 자주 경험한다 

그것은 <이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이 시기, Today, Nowadays, Contemporary 등으로 불리는 시간대에 대하여, 

우리는 자주 "보편성을 상실한, 각자 알아서 사는, 각자 자기의 취향에 맞게, 남에게 나와 같은 것을 강요하지 않는" 등의 시대라고 여긴다

취향과 독립성을 지칭할 때는 매우 긍정적이지만, 타자와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는 영역, 즉, 윤리나 종교, 도덕, 사회, 국가 등의 차원에서 보자면 

이 시대는 윤리적으로 상대적이고 개인적이고, 경제적으로는 더욱이 이기적이기까지 하며, 그렇게되면 어느지점엔가는 윤리적 도덕적 타락, 

정치-외교적인 마키아벨리즘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아노미 상태로 여겨지기도 한다 

철학도 역시 이에 발맞춘다는 듯이, 이성을 부정하거나 격하하고 감성을 대신 내세우며, 정신에 대해서 말하기 보다는 몸에 대해서, 

우리의 욕망에 대해서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진리가 영원불변하다는 인식하에 다양하고 다채로운 것들을 하나의 동일한 보편성을 기준으로 정렬시키는 형이상학이 

시대착오적이거나 전체주의적인 것으로 단죄받았다고 해서, 

철학이 언제나 추구해오던 <보편성>과 <이성>과 <본질>, <진리> 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라진 것이 아닐뿐만 아니라, 여전히 철학은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드러낼 수 있는가를 고민하여왔다 

들뢰즈도 마찬가지다 

그가 자신의 박사논문에 대해 발표하는 자리에서 플라톤의 이데아를 비판적으로 다루면서, 

"그것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누가, 어떻게, 얼마나, 어디에서, 언제, 어떤 경우에?"라는 질문으로 다루어야한다고 말한 바 있다. 

-"La methode de dramatisation", L'ile deserte et autres textes, pp.132-134.  

이 발언은 이데아를 그 사례들로부터 독립시켜 그 자체로 다루는 것보다는, 

그 사례들로부터 다루어야한다고 말하는 것으로서, 

보편성이라는 것은 시공간적 좌표들에 흔적을 남기는 모든 형태들, 특이성들로부터 다루어야한다는 뜻이다

물론 이러한 설명은 너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다르게 다시 말해보자 


IMG_153826801.png

플라톤 


스피노자는 자신의 위대한 저서의 이름을 Ethica로 짓고, 

그 안에서 형이상학과 인식론과 정서와 윤리학을 모두 다루었다 

그것은 물론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어떻게 해서 자유로운 인간이 될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이 

삶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사건들과  그 마주침의 결과 발생하는 정서들,

그리고 그 정서들과 맞물려있는 부적합하거나 적합한 인식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스피노자는 부적합한 인식을 1종 인식이라 이름붙이고

적합한 인식을 2종과 3종 인식 둘로 나누었다 

2종과 3종 인식이 둘 다 적합한데도 이를 구분한 것은 

2종 인식이 개별 사물들 사이에서 외관에 의해 파악된 공통성들the general을 인식하는 것으로서, 

아직 원인에 대한 인식에 이르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2종 인식은 개별 사물들the particular에 대해서도, 그 원인에 대해서도 아직 그 본질에 의해서는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3종 인식은 개별 사물1을 다른 개별 사물2와는 교체할 수 없게 만드는 특유한 것the singular으로서 인식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그 개별사물의 원인the universal을 이해하는 것이다 


스피노자의 이러한 사유는 매우 현대적이다

20세기 중반에 있었던 하버마스와 리오타르의 "모던-포스트모던" 논쟁은 

근대 합리성rationality을 고쳐써야하는가, 아니면 합리성이란 더이상 유효하지 않은가 하는 논쟁이었다

칸트가 완성한 합리성을 근대의 합리성이라고 본다면, 스피노자의 관점에서 그것은 제 2종의 인식에 불과하다

그러나 제 3종의 인식이라고 해서, 합리성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주로 여기에서 난관에 부딪친다 

근대 합리성이 세상의 전부였던 근대인에게 그 합리성이 유효하지 않다고 한다면 그는 곧바로 감정이나 감성, 충동, 욕망 등을 떠올리면서 

이러한 것들이 합리성과 모순관계에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근대의 합리성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철학자들이라고해서 합리성이나 이성, 보편성, 본질 등을 저버린 것이 아니다 

근대의 합리성이 관찰가능한 정보에 근거하여 일반성에서 멈추도록 하는 협소한 합리성 혹은 도구적인 합리성으로 축소되어서 문제인 것이지, 

합리성과 이성이라는 것은 애초에 Logos와 Reason으로서 우주와 동일시되거나, 인간이라는 종에 배타적으로 귀속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 어떤 것도 설명하지 않은 채로 두지 않았던 철저한 합리주의자 스피노자, 

그가 말하는 3종의 인식은 개별적인 것의 특이성을 이해하는 것으로서 그것이 곧바로 보편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개별적인 것들의 환원불가능한 특성, 각 나라의 고유한 특성, 나만의 고유한 독특성을 존중하는 것이 

곧바로 공통적인 것과 사회, 윤리와 도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개별적인 것들의 그 환원불가능성을 철저하게 이해할 때, 보편성에 대한 감각이 생기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미국의 발명품이고 이 카테고리에서 언급되는 현대 프랑스철학자들과 별반 상관이 없는 것이지만, 

우리가 굳이 우리의 시대를 포스트-모던하다고, 또는 포스트-휴먼하다고, 또는 트랜스-휴먼 하다고 말해야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보편성, 본질, 진리, 합리성, 이성을 버리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새로운 어떤 것을 따르는 시대는 아니라는 것만은 말해두고싶다

이 개념들은 혁신이 필요한 것이지 저버릴 것들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