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윌리엄스는 그의 책 Gilles Deleuze's Difference and Repetition 에서
[이 책은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 해설과 비판』으로 번역 출간되었으나 절판됨]
들뢰즈의 업적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들뢰즈는 조건과 조건지워진 것 사이의 상호 준인과관계를 밝혀낸 위대한 형이상학의 혁신과,
이는 논하기 위해 순수 차이들의 다수성과 강도들의 감쌈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개념적 혁신을 이루었으며,
『차이와 반복』은 실재가 단지 현실적인 것일 뿐이며 다른 모든 것은 불필요하고 상처뿐인 판타지라는
사실주의적이고 상식적인 믿음에 대한 주의깊은 대답이다"
나는 특히 밑줄친 문장에 깊은 공감을 느꼈다
내가 왜 다른 철학자가 아니고 들뢰즈에게 끌렸는지 설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는데
윌리엄스의 저 말이라면 그 대답이 될 것 같다
20대의 나는 스스로 불필요하고 상처뿐인 판타지처럼 느꼈다
내가 굳이 무엇을 위해 내 젊음과 열정을 투자해야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고,
그런 시간이 하루하루 지나면 지날수록
나 스스로에 대한 평가도 낮아져만 갔다
당시의 현실과 상식 그리고 사실들은
나에게 아무런 전망도, 기대도 심어주지 못했고,
나 스스로도 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다
말하자면 나는 아래의 두 이미지로 상징되는 1990년대를
혼란스럽게 지각하는 젊은이였던 것 같다

이미지 출처 https://archives.kdemo.or.kr/contents/view/325
<1990년대초에도 불심검문이 있었다>

이미지출처 : 나무위키 <한강의 기적>
당시 대학원에서는 우리나라에 아직 번역되지 않은 프랑스 원전들을 종종 복사해서 나누어 읽곤 했는데
『차이와 반복』이 그런 책들 중 하나였고,
물론 무척 어려웠지만,
나는 그 어려운 문장들 속에서 얼핏 얼핏 빛나는 저 메시지를 읽었던 것 같다
"실재는 현실적인 것인 것만이 아니며, 다른 모든 것 역시 불필요하고 상처뿐인 판타지가 아니다"
오히려 현실적인 것과 상식적인 것 그리고 사실들은 실재의 일면일 뿐
그러한 개념과 층위로 포착되지 않는 실재가 있다
내가 스스로 불필요하고 상처뿐인 판타지처럼 느꼈던 것은
이유가 있는 일이었다는 자각 같은 것이 생겼기 때문에
힘과 전망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것은 나에게 무척 중요한 일이었고,
그래서 이후로 들뢰즈가 내 삶과 연구에 일종의 나침반이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