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이미지 - 동물이 무리지어 이동하는 모습, 출처 : 

도나 해러웨이 (1944~)
해러웨이는 아래의 이유로 들뢰즈의 동물 개념을 비판한다고 한다
1. 들뢰즈는 현실 동물에 무관심하다 그가 언급하는 동물은 철학적이고 정신분석적이며 문학적이다
2. 들뢰즈가 관심을 갖는 동물은 분자적이고 악마적인 것이며, 친근한 세속의 동물은 비난한다
3. 들뢰즈는 오이디푸스와 자본에 대한 비판을 핑계로 여성과 늙음과 동물에 대한 혐오를 드러낸다
결국, 들뢰즈는 동물과의 구체적인 관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야생과 길들임, 동물과 인간의 이원론을 전제한다
Alain Beaulieu, ‘The State of Animality in Deleuze’s Thought’(Journal for Critical Studies, Vol. Ⅸ, 1/2, 2011), 80~81.
위와 같은 주장들을 앞에 두고 이를 철학적으로 논박한다는 것은 매우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들뢰즈를 두고 해러웨이가 하는 말은, '내 시간은 내 거야'라는 주장을 하는 누군가가 아인슈타인에게 그의 시간은 현실적이지 않고, 너무 과학적이라고 비판하는 것과 같다
철학자가 철학을 하는데 그의 말이 너무 철학적인 것이 비판의 지점을 구성할 수가 있는가?
반대로 보면, 해러웨이는 내 곁을 지키는 세속의 동물, 개나 고양이로서, 그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옹호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는 그러한 주장을 하기 위해 굳이 들뢰즈를 언급할 필요도, 비판할 필요도 없었다
그 둘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철학을 한편으로는 너무 어려워 자기네들끼리만 알아듣게 말한다고 비판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손쉽게 생각하여 아무나 철학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해러웨이의 이력을 살펴보니 그녀는 기본적으로 생물학자이다
그녀는 프랑스에 가서도 생물학을 공부하고 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글이 수필같기도하고 문학같기도 하다고해서 그가 갑자기 철학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은 매우 다른 전제와 언어를 가지고 있는데,
서양철학은 개념을 만들어내고, 개념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분야로서 생물학만큼이나 자신만의 도구가 있는 전문분야다
과학자가 에세이를 쓴다고 갑자기 과학철학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들뢰즈의 동물은 <되기>와 함께 언급되며,
그의 <되기>는 여성, 동물, 소수자 등과 함께 쓰이고 (여성-되기, 동물-되기, 소수자-되기),
다수자-되기는 없다
이때 동물은 소수적으로 다루어지는 것으로,
소수적이라는 것은 지배적-주류적-전체주의적이지 않은 흐름을 말하는 것이다
<되기>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개념어 암중모색]에서 소수자-되기 항목을 참조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