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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passion과 정서[감응]affect/ion, 그리고 감정emotion
대문이미지 : 123RF, by sanek13744우리말로 된 철학 텍스트를 보다보면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 저자가 그 단어의 함축을 잘 변별하지 않고 쓰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많다가장 대표적인 개념이 바로 이번 주제인 정념과 정서 등에 관한 것들이다 더구나 학부 학생들의 경우에는 어떤 개념의 뜻을 모를때 우리말 사전을 찾아보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철학을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잘못된 길로 우리의 생각을 인도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내가 가르치는 영역은 서양철학이라서 그들이 처음 쓰기 시작한 그들의 단어가 원래의 단어이고,우리말로 접하는 것은 중간에 번역자가 매개가 되어 원어에 대하여 그에 합당한 우리말을 고른 것이다그러므로 이해가 안되는 개념에 부딪치면 일단 원어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 급선무이다정념이라고 번역되는 원어는 우리나라에서 대부분 passion이다 passion은 passive와 같은 어근을 가지고 있는 단어로서 수동성을 담보로 한다이 개념은 주로 데카르트에게서 등장하며, 그는 정념이 외부 대상으로부터 대면한 주체에게 수동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보았다정념이 명료한 인식에 도움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데카르트는 정념을 유발한 외부 대상을 인식함으로써 즉, 정념의 원인을 인식함으로써 이 정념으로부터 해방되고자했다 그런 함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passion은 주로 사랑에 빠졌을 때의 상태, 주체가 이 정념을 통제할 수 없는 상태임을 말할 때, 그때 주로 사용된다그러나 같은 시대 스피노자는 passion이 아닌 affection이라는 다른 개념을 사용했다affection은 정말 번역자마다, 번역대상이 되는 철학자마다 다르게 번역되어 아주 어려운 단어가 되어버렸다간단히 말하자면 passion 은 외부 대상에 의해 주관에 발생하는 수동적인 것인 반면, affect 는 외부 대상을 경험하는 주관이 그런 경험을 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 느끼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자발적이며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다 베르그손도 affection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그가 보기에 affection은 대상과 주관의 거리가 0이 되어버리는 순간, 주관이 지각의 대상이 되는 순간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이때 통증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대상에 대한 주관의 거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한다고통을 피하려는 무익한 노력이라고 하기도 했다 [즉 베르그손에게도 affection은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다]베르그손은 affection에 대해 자세히 검토하지 않기 때문에 통증이나 고통douleur정도만 이야기하고 마무리해서 이것을 정서라고 말하기도 참 애매히고 그의 주된 관심이 신경생리학에 많이 가 있으니 베르그손에게서는 affection을 감응이라고 번역하는 것도 적절해보인다 그러나 passion과 다른 것은 분명하다스피노자는 [홈피에서 제공하는 폰트에 책 표시기호가 없음에 양해 부탁드립니다] 3장 정서에 대하여-에서 48개의 affection을 다루기 때문에 이것은 충분히 정서라고 말할 만 하다 또한 정신분석에서도 이와 같은 개념을 함께 하며 이 분야에서는 affection을 정서 혹은 정동이라 번역한다 emotion을 규정하는 것은 어렵다이 개념을 쓰는 철학자가 그 나름의 개념 규정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하지만 passion도 아니고 affection도 아니면서 emotion을 쓴다면 위의 두 개념과는 다른 그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passion이 수동정념이고 affection이 적극적인 정동, 정서, 혹은 감응[영혼의 움직임]이라면, emotion은 우리의 언어에 적응된 감정을 말할 확률이 높다우리가 잘 알고 있고, 언어로 존재하는 감정들 그것이 emotion일 것이다affection과는 어떻게 다른가? 사실 affection이라고 하여 스피노자는 48가지의 정서들을 나열해두고 있지만 affection은 영혼의 다양한 움직임으로서, 언어 이전의 것이고, 언어로 고착된 특정 감정으로 단언하기 직전의 어떤 미분적인 것들이다그래서 affection을 감지한다는 것은 세계를 대면하는 내가 세계에 대해서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지를 미세하게 관찰하는 것이다 그것은 듬성듬성 무 자르듯이 슬프다 기쁘다 즐겁다 등의 뭉툭한 감정으로는 묘사되지 않는 내 영혼의 움직임에 귀기울이는 일이다 affection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그러므로 내가 나 자신의 변화에 예민해진다는 것이며, 그로부터 나 뿐만 아니라 나에게 그러한 변화를 촉발한 외부에 대한 세심한 시선을 가진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025.01.27
철학과
위도와 경도, 지도제작cartographie
남쪽을 위로 해 제작된 프라 마우로의 세계지도. 원형 밖의 왼쪽 위가 천계도(天界圖) 이고, 아래가 지상의 낙원, 오른쪽 아래가 대권도(帶圈圖) 출처 : 월간산(http://san.chosun.com)들뢰즈와 가타리는 총 네권의 중요한 공저를 남겼다 앞선 FAQ에서 여러차례 언급했듯이 그 가운데 『자본주의와 분열증』 두 권은 번역으로 거의 2000페이지에 달한다사람들은 기 아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궁금해했다위의 두 권 중 2권에 해당하는 『천개의 고원』MP 1장 에는 두 사람이 어떻게 작업했는지 일부 묘사되어 있다 "우리는 이 책을 고원들로 구성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우리는 각자 어떤 고원을 선택할 것인지를 자문하고,여기 다섯 줄, 저기 열 줄을 쓰곤 했다... 우리는 우리에게 어울리는 적합한 방식을 알지 못했다...우리는 단지 몇 단어를 골랐고, 그 단어들이 나름대로 고원으로 기능했을 뿐이다리좀학 = 분열분석 = 지층분석 = 화행론 = 미시정치 "(MP, 49~50쪽)두사람이 고른 다섯 개의 단어들 가운데 은 지리학적 개념이고, 이와 더불어 지도제작, 위도와 경도 뿐 아니라, 고원, 다지고 고르는 건축적 개념 등이 따라나온다그리고 이 개념들은 현대 지리학의 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도제작 그리고 위도와 경도는 과 『천개의 고원』 전체 외에도 다른 짧은 글들에 조금씩 등장한다 스피노자와 관련한 글,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 123쪽)를 보면 스피노자가 신체를 이해하는 방식에 대하여 이렇게 썼다 "중세의 용어 또는 지리학의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우리는 그것을 경도와 위도에 의거하여 정의하게 될 것이다."이것은 우리가 다른 FAQ(차이의 철학은 상대주의인가요?)에서 일부 다루었던 좌표의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한다 그때 우리는 다음 두 좌표를 이용했다 존재로부터 초월해 있는 좌표로 존재의 각 위치를 표기하는 방법과 존재와 좌표가 일치하는 내재적 기하학을 말이다 두번째 기하학은 정확히 위도와 경도로 위치를 표시하는 지도이다이 때, 아래의 그림에서처럼 적도로부터의 거리 혹은 각도 Φ 에 따른 선들이 위도latitude이고특정 기준선으로부터의 거리 혹은 각도 λ 가 경도longitude 이다 지도의 아이디어는 우선 내재성의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그는 를 빌린다고 하였다 중세에서 그리고 지리학에서 위도와 경도를 사용하여 지도를 제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대문 이미지와 문서의 첫 이미지는 중세 지도의 이미지이다 중세의 지도가 가지는 특징은 지리적 정보를 정확히 전달하려고 한다기보다는 종교적, 철학적, 상징적 세계관을 반영했다는 데 있다 예루살렘이 세계의 중심에 배치된다든지, 해가 뜨는 동쪽에 에덴동산을 위치시킨다든지, 신화적 동물이나 천사를 그려넣는 식이다 현대의 지도라고해서 완전히 객관적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너무 많은 논쟁점들이 있지만 한가지만 말하자면 가장 많이 사용되는 메르카토르 투영법은 유럽과 북미를 크게, 아프리카와 남미는 실제보다 작게 나타낸다]근현대인의 세계관에는 삭제된 것들, 영적인 것, 상상적인 것, 괴물까지도 포함시켜둔 다양성 등을 반영한 점이 특징이다중세와 지리학적 용법의 지도제작, 위도와 경도 개념을 사용한다는 것은그러므로 근현대 분류학과 철학이 사물과 존재를 기능과 기관을 통해 이해하고 주로 형태라는 좌표로 위치시키는 데 반하여, 이를 과 를 통하여, 스피노자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affection들을 통해 이해하겠다는 것을 뜻한다그것은 다시 말해서 존재를 기관과 기능, 형태 등을 통해 미리 전제되어 있는 분류틀로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실험해가면서 그의 affections을 한 지점 한 지점 찍어 지도를 그리겠다는 뜻이다 이것이 달리 말하면 행동학ethology이고, 스피노자식 에티카ethika이다 들뢰즈-가타리의 유명한 예를 보자면, 그들은 수레를 끄는 말은 경주마보다 소와 더 가깝다고 하였다이것은 어떤 말을 단지 기관과 형태를 근거로 무조건 로 분류하면 안되고, 그 말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와 관련하여 그 위치를 지정해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각자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어떤 국면에서 어떤 속도로 가고 있는지, 나는 어디에서 느린지 등을 스스로 경험하고 나서야 나의 지도를 그릴 수 있는 것이다행동학, 혹은 차이의 윤리학은 자신의 힘을 실험해보고 그 속도와 위치 그리고 할 수 있음 등을 겪으면서 자신의 좌표를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의 할 수 있음을 무한히 분기시키는 것, 그것이 또 다름 아닌 리좀이다 아래의 지도는, 딱 맞는 예시인지 모르겠으나, 행복함이라는 affect를 놓고 세계의 지도를 그려본 사례로 볼 수 있겠다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146개국을 대상으로 '2022 세계 행복보고서'(2022 World Happiness Report) 발표함. 이에 근거한 세계행복지도 출처 : 매드타임스(MADTimes)(http://www.madtimes.org)
2024.12.24
철학과
유목적 분배
대문이미지출처 , 양을 치는 몽골인 아래 이미지출처 Everyday Philosophy 를 쓰다보니, 이 사례를 통해 유목적 분배distribution nomadique를 설명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들뢰즈가 주장하는 존재의 일의성이라는 테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테마와 정확히 대립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 여기저기에서 특히 5권 7장 에서 '의 의미는 다양하다'는 존재의 다의성equivocity이라는 테마를 전개했다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는 목수로 있음과, [집을] 지음이라는 두 이 다르고, - 이 세상에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존재[있음]이므로 - 건강함과 걷고있음 등의 이 모두 다르다는 주장이다 (이제부터는 있음을 존재로 바꿔 말하겠다) 즉, 목수라는 존재와 지음[집을 지음]이라는 존재는, 실체로 있는 것과 실체에 속하는 것으로서 차이가 나고건강함이라는 존재와 걷고 있음이라는 존재는 성질과 능동으로서 차이가 난다는 식이다이렇게해서 이 세상에 들은 더 이상의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10개의 범주로 분류된다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다범주는 존재에 대한 최후의 분류인 셈이다들뢰즈는 이러한 테마에 정면 반박하면서 '존재는 모든 개별적인 차이들 혹은 내적인 양상들에 대하여 단 하나의 같은 의미로 말해진다'(DR, 53)는 다소 어려운 주장을 한다 이것이 존재의 일의성univocity 이다 유목적 분배>라는 테마는 바로 여기에서 등장한다 말하자면 존재가 다양한 의미로 말해진다는 입장은 존재가 10개의 범주로[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철학에서] 분배된다는 것인데,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식으로...) 존재가 일의적이라면 존재자들이 모두 뒤섞인다는 말인가? 존재의 분배가 없다는 말인가? 이에 대한 들뢰즈의 대답이 바로 유목적 분배이다 존재가 일의적이어도 위계와 분배는 있다 (DR, 원서 53~54/ 번역번 페이지는 나중에 추가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때 위계와 분배는 아리스토텔레스식의 위계와 분배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유목적 분배는 분배될 땅, 분배될 몫, 분배될 비율 등이 미리 정해져 있어서 거기에 존재를 나누어 넣는 것이 아니고[이것은 정착적 분배], 존재의 움직임에 맞춰 땅이나 몫을 나중에 할당하는 것이다 정착적 분배라는 것은 말하자면, 좌파라는 땅에 분배-평등-환경-노동자라는 몫을 배정하고, 우파라는 땅에 자유-성장-경쟁-개발-기업가 등의 몫을 배정한 후에, 민중을 두 땅 중 하나의 땅으로 분배하는 것이고, 유목적 분배라는 것은 말하자면,민중-욕망의 흐름이 있고 그 흐름이 강력하게 기울어[강도가 높아져서]어느 순간 하나의 욕망이 개별화되고, 하나의 현실적인 요구가 될 때, 그 요구에 맞춘 그때 그때의 운동이 발생하고 그 운동에 이름을 붙이는 식이다 재치와 유머가 가득한 요즘의 집회 깃발들이다 이들이 지금 저자리에 함께 모여 강한 에너지를 폭발시키면서 단 한가지를 요구하고 있는 모습이 바로 유목적 분배의 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저렇게 다양한 기질과 감정과 욕망과 생각들에 갑자기 좌파와 우파라는 깃발을 붙이면 아마 많은 이들이 불쾌해할 것이다 좌파와 우파라는 경직된 분배에 민중이 분배되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많은 점에서 현실과 괴리되고 망상적 신념을 생산하고 반목과 혐오를 낳는다 정당정치는 존재할 것이다 그들의 입법도 필요하다 민중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충실하고 그 흐름에 이름을 분배함으로써 정당들이 따라오도록 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것이 바로 유목적 분배이다
2024.12.19
철학과
소수자-되기
카프카, 1883~1924소수자-되기 Becoming-minor/monirity (Devenir-minoritaire)소수자-되기devenir-majoritaire 개념은 소수>와 되기>라는 두 개념이 결합된 개념이다. 다수majeur, 다수자majoritaire는 표준과 상수에 관련하며 다수적 사실은 표준적 인물Personne로부터 나오는 분석적 사실이고, 소수mineur, 소수자minoritaire는 표준으로부터 일탈하는 모든 되기devenir를 가리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잠재적으로 되기devenir potentiel가 된다. 그러므로 다수자-되기는 없다. (1) 소수/소수자 : 소수>라는 개념은 애초에 들뢰즈와 가타리가 1975년 카프카에 관한 저서를 집필하면서 형식화한 소수 문학littérature mineure> 개념으로 등장했다. 소수자-되기>는 『천개의 고원』에서 소수 개념이 좀 더 일반적인 사유의 영역으로 그 쓰임새가 이동한 지점에서 등장한다. 소수는 그러므로 우선은 소수문학의 두드러진 특징을 간직하고 있다. 뒤플레이는 이를 세 가지로 정리한 바 있다.첫째 소수문학은 언어에 대한 모든 할당과 통제의 사용법으로부터의 도주 혹은 탈영토화에 기반한다. 둘째 다수문학은 정치-사회적 관계를 개인으로부터 분리된 배경으로 보는 데 반해, 소수문학은 언제나 정치-사회적 관계에 대한 개인의 예속과 권력의 문제를 다룬다.셋째 그러므로 소수문학은 집단으로부터 분리된 개별 발화라는 것은 없으며 개인은 언제나 집단적인 발화의 조건을 갖는다고 본다. 즉, 소수문학은 민중의 것이다. (2) 되기와 소수자의 개념적 일치 : 언어가 다수와 소수에 연결된다고 하면 우리는 즉시 이를 표준어와 비표준어(이를테면 방언, 사투리 등)에 연결하기 쉽다.[사실 방언과 사투리는 그 자체로 이미 재영토화된 것들이다.(『천개의고원』, 202)그러나 다수와 소수는 두가지 언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두 가지 사용 또는 두 가지 기능을 규정하는 방식”(『천개의고원』, 200)이다. 즉, 그것은 언어의 기표적이고 의미작용적인 사용 과 강도적인 사용을 대비시키는 개념이다.(『카프카』. 35) 이 개념은 점차 그 영역을 확장하여 일반화되며, “음악, 문학, 언어학을 참조할 뿐 아니라 법률, 정치도 참조한다. 상수 또는 표준을 이성애자-유럽인-표준어 사용자-도시 거주자-성인-남성-백인이라고 상정해보자...성인 남자 인간(l’homme)은 모기, 아이, 여자, 흑인, 농부, 동성애자 등보다 수적으로 적더라도 다수majorité이다”(『천개의고원』, 203) 소수자가 된다는 것은 표준화된 할당과 통제로부터 벗어나기, 개인의 발화조건이 정치-사회적인 발화의 조건으로부터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 인지, 사적이고 소소한 일상의 집단발화의 조건 마주하기, 매 순간 개인의 권력에의 예속 대면하기 등의 활동 또는 과정 그 자체이다. (3) 되기 : 그러므로 소수자-되기는 어떤 남자가 성전환에 의하여 여자가 된다든지, 어떤 사람이 특정 동물을 흉내낸다든지, 도시 비대화에 대항하여 지역주의를 도입한다든지 하는 어떤 실체적으로 확인되는 소수를 재생산하거나 그 소수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다. “알베르틴이 항상 꽃을 흉내낼 수는 있다. 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움과 피부의 입자가 그녀를 분자적 식물의 영역에 가져다 놓는 휴식과 운동의 관계 속에 들어가는 것은 그녀가 잠들 때, 그리고 그녀가 졸음이라는 입자들로 구성될 때이다”(『천개의고원』, 337) 그녀의 졸음, 잠듦, 피부의 입자들, 꽃의 선, 꽃의 정지와 움직임, 강도 등은 소위 분자적으로, 하나의 되기의 블록을 이루면서 절차를 생략한 채 서로의 포획 속으로 직접 들어간다. 그러므로 되기는 잠재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하나의 과정이고, 부분들의 직접적인 만남과 생성이다.(4) 일반적인 오해되기는 실체적 존재들이 서로를 흉내내거나 닮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저자들이 여러차례 언급하는데도 불구하고 이 개념은 자주 오해되고 왜곡되어 사용된다.그들이 되기와 함께 언급하는 여러 개념들, 이를테면 여성-되기, 동물-되기, 분자-되기 등의 개념들은 모두 소수자-되기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되기 앞에 붙는 여성, 동물, 분자 등의 개념을 실체적인 존재로, 즉 명사로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오해는 불식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또 다른 많은 오해를 일으킨다. 중심과 표준, 할당과 통제를 벗어난다는 명목하에 방언과 같은 소수어 사용 운동, 게토나 지역주의를 부활시키거나 활성화하는 운동(『천개의고원』, 205), 생물학적 여성만을 여성으로 인정하는 페미니즘의 얼굴을 한 거꾸로된 파시즘, 동물권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 등이 그러한 왜곡의 전형들이다. 지역주의는 또하나의 중심을 만드는 것일 뿐이며, 생물학적 여성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는 또 다른 얼굴의 성차별이고, 종차별을 극복하겠다는 동물권에 대한 강조는 새로운 종차별을 낳을 뿐이다. 소수자-되기는 그 어떤 표준화도, 통제에 의한 의미의 할당으로부터도 섬세하게 도주하는 과정으로서, 이 과정이 다시 파시즘이 되는 것은 아마도 소수자-되기에 대한 최악의 오해의 결과일 것이다. 작성자 신지영, 『나와 타자, 가족커뮤티니의 개념들 관계편』, 2023년 2월 73~81쪽 수록된 원고 일부 발췌대문 이미지 : 르네 마그리뜨, The lovers, 1928년, oil on canvas
2024.12.05
철학과
개념과 이념
나무를 예로 들어보자 사전을 찾아보든, 식물학자에게 물어보든 우리는 쉽사리 나무에 대한 정의를 찾아볼 수 있다 정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거기에는 단순한 정의라면 한 두가지의 규정determination이 들어있겠고 복잡한 설명이라면 많은 규정들이 있을 것이다 규정들의 적절한 집합이 개념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우리는 나무에 대한 별다른 개념이 없는 아이들도 나무들을 보면 그 나무가 어떤 특정한 나무이든간에 나무라는 것을 식별할 수 있고 나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나무에 대한 개념은 나무라는 존재에 대한 우리의 파악인데 존재란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아무리 파악해도 잔여가 있다남김없는 파악이란 가능하지 않다이념이란, 개념의 최대한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더이상 파악하지 못하고 남겨진 잔여라고도 말할 수 있고 거꾸로 그 존재에 대한 모든 개념들을 가능하게 하는 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들뢰즈 용어를 사용한다면, 이념은 나무[존재]를 반복하게 하는 실증적인 힘이다
2024.11.14
철학과
n승의 역량
아래의 그래프들을 보자 처음 세 그래프는 오른쪽으로부터, 자유낙하 운동하는 물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동한 거리, 속도, 가속도이다. 이 운동은 등가속도 운동이어서 가속도가 상수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동일하고, 속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정하게 증가하며 거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급격히 멀어진다. x축은 모두 시간축인데, y축은 거리, 속도, 가속도로 달라진다. 그런데 속도는 거리/시간이고, 가속도는 속도/시간 = 거리/시간/시간이다. 즉, 속도의 y축은 이미 시간과 거리의 관계가 함축되어 있고, 가속도의 y축은 시간과 속도의 관계, 혹은 시간과 속도의 관계와 그것의 시간의 관계가 다시 한번 함축되어 있다. 속도의 y축은 2승의 역량을, 가속도의 y축은 3승의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거리 함수를 미분하면 속도 함수가 되고 이를 다시 미분하면 가속도 함수가 된다. 거꾸로 가는 방향은 적분이다. [내용 아래에 이어짐]우리의 현재 모습을 x와 y의 관계라고 설명한다고 해보자.x와 y는 각기 a와 b, c와 d의 관계로 미분될 수 있다.그리고 a, b, c, d의 요소는 다시 한번 미분될 수 있다. 현재 관찰가능한 변수 x와 y 는 이렇게 n번의 미분으로 n승의 역량을 가진 변수로 분석해볼 수 있다. n승의 역량이란 대략 이런 것이다. 이를 한 명의 개인, 하나의 사회에 적용해본다면 어떻게 될까 개인의 힘과 의지를 미분해볼 수 있다 그의 말과 행동을 이루는 변수들은 무엇일까 어떤 개인은 변수들의 분석이 3차나 4차에서 끝이 나버릴 수도 있고어떤 개인은 분석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기도 할 것이다 또한 그 개인은 자신의 변수를 지속적으로 미분해가면서 자신의 역량을 매번 한계에 밀어부칠 수도 있다사회도 마찬가지다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변수들, 변수의 관계들, 그것들이 이루는 함수들은 그 사회의 역량이다한 사회가 마주친 문제에 대한 해결은 이 역량에서 나온다현재 우리가 마주한 문제들은 그 이전 문제의 해결에서 비롯된 것이고 말이다
2024.11.13
철학과
리좀
리좀 이미지, 이미지소유자 안정은 https://youtu.be/YS9d6TT3SbE?si=WZOiGKyFjlthrCut매트릭스 II 리로디드에서 네오가 매트릭스 설계자를 만나는 마지막 장면이다네오 뒤에는 수많은 화면들(브라운관들)이 펼쳐져있고, 두사람의 대화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변한다 때로는 서 있는 네오는 가만히 있는데 화면 속 네오들은 시끌시끌하다 이 시끌시끌한 네오는 서있는 네오의 잠재성들이자 네오의 리좀이라 볼 수 있다가끔 화면에는 네오가 아닌 세계상들이 펼쳐진다나의 존재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내가 겪든 겪지 않았든 수많은 인간사가 리좀처럼 연결되어있다리좀은 그저 펼쳐져 있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소위 가상illusion이라 불리는 것들, 들뢰즈 개념으로 하자면 잠재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을 함께 생각해야하는 개념이다 매트릭스의 이 장면을 시뮬라크르의 예시로 가지고 온 연구원은 장세훈, 리좀과 연결한 학생은 조은솔입니다
2024.11.07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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