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보다 ‘즐거움’이죠
정동욱 교수 인터뷰
인터뷰어 임미경, 차봉석

8월 모일(某日), 2020년 3월부터 경상국립대 철학과에서 과학철학 등을 가르치고 있는 정동욱 교수와 인터뷰를 가졌다.
전공과 연구 분야에 관하여
인터뷰어 | 전공과 현재 관심사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정동욱 교수 | 제 전공은 과학철학이고 과학철학 중에서도 상당히 전통적인 주제라고 할 수 있는 과학의 합리성과 객관성을 해명하는 데 관심 있습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방식의 해명은, 그동안의 과학사학자나 과학사회학자들의 연구 결과들을 고려할 때, 좀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해요. 따라서 과학의 역사적 변화와 사회적 상호작용, 그리고 인지적 한계, 예를 들면, 과학자가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어떤 고유한 편향들 등을 다 고려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그리고 우리가 꼭 지켜야만 하는 그런 과학의 합리성과 객관성을 밝혀내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그거 말고도 최근에 새롭게 생긴 연구 주제는 서양근세철학인데, 원래 제 전공은 아닙니다. 전임자이신 정병훈 교수님이 서양근세철학, 그러니까 뉴턴, 흄 전공이시기도 하시고, 로크 책도 번역하시고 그러셨죠. 그래서 이제 저도 왠지 그런 걸 해야 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어가지고요. 근데 막상 수업을 해보니까 저랑 꽤 잘 맞더라고요. 과학사의 가장 핵심적인 무대가 16, 17세기 과학혁명기인데, 근대철학이 다루는 시기가 보통 17, 18세기라서 시대적으로도 서로 연결이 많이 되고, 주요 인물들도 많이 겹칩니다. 데카르트, 로크, 라이프니츠 등은 알고 보면 과학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들이었죠. 데카르트는 근대 역학 분야에서 기계적 철학을 주창한 핵심 인물이었고, 로크도 의사이면서 뉴턴과 많은 상호작용을 했던 사람이었고, 라이프니츠도 마찬가지죠.
그러다보니 제가 공부한 과학사/과학철학의 배경을 통해 근대철학사를 접근하면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보기 어려운 것들을 볼 수도 있고, 좀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하다 보니까, 학생들에게 뭔가 저만의 방식으로 서양근대철학을 재구성해서 소개해 줄 수 있을 것 같고, 학문적으로도 뭔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도 많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직 본격적으로 하고 있지는 않지만, 수업을 하면서 논문으로 써볼 만한 주제들을 찾고 있습니다.
수업에 관하여
인터뷰어 | 오랫동안 서울에서 공부하시다가 경상국립대학교에 부임하셨는데 소감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정동욱 교수 | 제가 2020년 1학기에 들어왔는데, 딱 코로나 시즌이 시작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부임되고 나서 첫 경험이라고 하면 다 코로나 경험이고, 첫 두 해 정도는 거의 유튜버가 된 느낌으로 지냈습니다.(웃음) 그러다가 한 번은 첫해 봄쯤에 점심 먹으러 나갔다가, 모르는 학생이 지나가다가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고, ‘강의 잘 듣고 있습니다.’라고 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인터뷰어 | 학생들 다시 보게 됐을 때 굉장히 좋으셨겠어요.
정동욱 교수 | 훨씬 재밌죠. 다만 방송용으로 만든 수업이 대면수업과는 수업 방식이 달라서 이것저것 많이 바꿔야 하는 게 힘든 점이었죠. 예를 들어, 수업시간 같은 경우에도, 방송으로 녹화를 해가지고 업로드를 할 때는, 학생들이 집중하기 어려우니까, 기왕이면 좀 짧고 굵게, 최대한 1시간 이내로 맞추려고 노력을 했었는데, 실제로 대면수업을 하면 그보다 길게 해야 하죠.
인터뷰어 | 수업을 할 때 선호하는 방식이 있으신가요?
정동욱 교수 | 제 생각에는 학생들이 어쨌든 직접 뭔가를 해야지만 남는다고 생각을 해요. 예를 들면 수학이든 과학이든 자기가 직접 풀어봐야 남는 거지, 수업만 들어서는 소용이 없잖아요. 결국엔 다 자기가 직접 해봐야 된다고 생각은 하는데, 문제는 제가 그런 수업을 잘 못해요.(웃음) 토론을 어떻게 시켜야 되는지, 제가 직접 배운 바도 없고. 아마 제가 대학 때는 수업을 안 들었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웃음)
인터뷰어 | 수업을 잘 안 들으셨나요?
정동욱 교수 | 대학교 때는 점수가 거의 백화점이었죠.(웃음) 그게 A+부터 F까지, 저희는 +, 0, -가 다 있었어요. 그 모든 종류의 학점이 다 있었거든요. 심지어 D도 +, 0, -까지 다 있었습니다. 대학교 2학년인가 3학년인가부터는 수업에 거의 들어가지 않았던 거 같아요. 그리고 심지어 정식 철학 수업도 들어본 적이 별로 없고.
그래도 어쨌든 이러저런 상호작용도 하고, 토론도 하고, 직접 자기가 읽고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은 합니다. 그런데 막상 제가 강의할 때는 다 주입식으로 하죠.(웃음) 그래도 완전히 주입식이라기보다는, 이해를 최대한 시키려는 방향에서 사례를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는 편입니다. 좀 최대한 재미나게요. 제가 과학을 약간 마니아틱하게 좋아하기도 하고, 거의 사례 자판기처럼, 과학사나 과학철학에서 등장할 만한 여러 사례들이 거의 뭐 툭 치면 탁 나오는 것 같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편인데, 그래서 그런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서 좀 어려운 개념들을 이해시키는 데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어 | 철학 공부에서, 특히 과학철학 공부를 위해 필요한 소양 같은 게 있을까요?
정동욱 교수 | 철학, 특히 과학철학을 위해 필요한 소양 같은 것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어떤 과학 분야를 부전공하듯이 뭔가를 공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자기가 분석하려고 하는 어떤 대상이 있다면, 예를 들면, 생물학 내에서 진화론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적어도 그거에 대해서는, 내가 그냥 전문가의 어떤 권위에 호소해서 그걸 그냥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나도 그 문제에 대해서는 그 사람만큼이라도 이제 평가할 수 있는 자격을 스스로 갖추는 비판적 평가자는 될 수 있을 정도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봐요. 그러니까 나도 그것을 평가할 자격이 있고, 지금은 못하더라도 공부한다면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 정도는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교과서 정도는 이해할 수 있어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화의 문제에 대해서 연구를 한다고 한다면, 어쨌든 그 연구를 시작하려면, 교과서 정도는 읽을 수 있어야 하죠. 하지만 전문 연구자처럼 그 연구를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숙련, 예를 들어 실험 기구를 다루는 법 같은 것까지 배울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알려져 있는 지식들을 가지고, 어떤 연구 발표가 있으면, 그걸 읽고 그 안에서 논리적 관계를 평가하면 되는 거죠. 사실 전문 연구자들조차도 남의 연구를 평가할 때는 약간 아마추어의 자세에서 평가를 하게 되거든요. 그런 점에서 그렇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어 | 학생들과 수업 외적으로 스터디를 꾸린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정동욱 교수 | 이게 수업 말고 하는 거니까 너무 빡세면 안 될 것 같고, 학생들이 흥미를 가지게 하는 쪽으로 해야 할 것 같네요. 제가 보기에, 철학과 학생들이 과학에 겁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으니까 좀 과학에 친근감을 줄 수 있는,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그런 책들을 같이 보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이기적 유전자』 또는 『아름다움의 진화』 같은 책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어 | 철학, 또는 과학철학이 학생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보시나요?
정동욱 교수 | 제가 생각하기에, 철학이라고 하는 게 되게 다양한 사고방식들의 모음이죠. 똑같이 철학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정말 다른 얘기들을 다 철학이라면서 하고 있죠. 알고 보면 이게 인류가 창안해 낸 수많은 사고방식들의 보고인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여기서 철학을 잘만 배운다면) 자신의 어떤 좁은 사고방식의 틀을 깰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그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열린 마음과 끈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철학 수업에서는 내가 평소 가지고 있는 생각과 거리가 있는 아이디어를 접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내가 평소 가진 생각과 대충 섞어서 이해하면 그 아이디어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채 그에 대한 어렴풋한 이미지만 얻게 되지요. 머리를 바꿔 낀다는 생각으로, 또는 모드를 전환한다는 생각으로, 다양한 사고방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죠. 시간도 오래 걸리고요.
인터뷰어 | 혹시 과학철학과 관련해서는요?
정동욱 교수 | 현대 사회가 과학이 너무 중요하게 취급되는 사회잖아요. 가끔씩 과학이라는 말을 수식어처럼 사용해서, 남들 욕할 때 비과학적이라고 욕하고, 자기가 하는 것을 내세우고 싶을 때 우리가 하는 건 과학적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사실은 그게 너무 과장된 얘기일 때도 많거든요. 그래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직접 과학과 관련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과학이라는 거에 대해서 뭔가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과학철학이란 수업이 학생들에게 과학을 너무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거나, 맹목적으로 신뢰하거나 불신하거나 하는 극단적인 태도들로부터 벗어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공부의 계기, 여정
인터뷰어 | 어떻게 해서 과학철학을 전공하시게 되셨나요?
정동욱 교수 | 이 질문을 많이들 물어봐서 약간 정해진 답이 있습니다.(웃음) 제가 97년에 서울대 컴공에 들어갔는데 공부를 안 했죠. 거의 학부를 6년 다녔는데, 6년 동안 공부보다는 맨날 데모 나가고 그랬습니다. 망해가는 학생 운동을 마지막 끝자락까지 붙잡고 있었던 거라고 보면 됩니다. 그때 맑스주의 철학이랑 맑스주의 경제학 공부하고, 사회과학 일반에 관심을 좀 가지긴 했었죠.
그렇게 있다가, 졸업 직전까지도 아무런 준비도 안 된 상태였고, 결국 졸업 후 백수가 됐습니다. 그렇게 백수가 돼서 농구공 들고 대운동장 가서 사람 수 채워지면 3대3, 4대4 농구하면서 놀고, 그러고 있으니까 주변에서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고, 뭐 하는 짓이냐고 그랬죠. 그러다가 누가 ‘공부나 더 해보지?’라고 해서 대학원을 가볼까 했죠. 그때 생각한 건 경제학, 철학 이런 거였는데, 막상 하려니까 거기에 전문 지식도 없고, 잘할 자신은 딱히 없고 그랬죠. 그러다가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 간 사람이 있었어요. 거기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분 만나서 거기 뭐하는 곳인지, 들어가려면 뭘 해야 되는지 물어봤더니, 학부 세미나라고 하는 거 좀 참여하고, 그 다음에 거기서 개설한 교양수업들 좀 청강하고, 에세이 쓰고 들어오면 된다고 해서, 열심히 준비해서, 수업 듣고, 학부 세미나도 듣고, 그러고 들어갔죠.
그때 추천을 받은 책이 장회익의 『과학과 메타과학』이랑, 그 다음에 학부 세미나 때 읽은 책이 앤서니 그래프턴의 『신대륙과 케케묵은 텍스트들』이었는데, 그 책 너무 재밌는 거예요. 과학과 메타과학도 읽어보니까 너무 재밌고. 내가 알고 있던 거랑도 잘 연결이 되고. 과학사 개론이라고 하는 그 교양 수업도 너무 재밌고. 알아볼수록 여기가 딱 맞다는 생각이 들었죠.
또 제가 당시에 관심 가졌던 주제 중 하나가 ‘맑스 경제학도 과학일까’, ‘만약 가치가 노동에서 나온다면, 그것을 경험적으로 입증할 수 있을까?’ 이런 거였는데, 그런 질문들이 알고보면 과학철학과 관련이 깊은 인식론적 질문이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중, 고등학교 시절에 과학, 특히 물리를 좋아했었는데, 그 때의 관심 중 일부는 상당히 과학철학적인 관심이란 걸 깨달았죠. 당시 물리경시대회 준비하면서 본 기출 문제 중에서 뉴턴의 세 가지 법칙에 관한 게 있었어요. 제1법칙, 제2법칙, 제3법칙이 있는데, 왜 뉴턴의 제1법칙이랑 제2법칙이 따로 있냐는 거였죠. 제1법칙은 관성의 법칙이고 제2법칙은 F=ma잖아요. 그런데 관성의 법칙은 힘이 가해지지 않을 때 물체는 직선 등속 운동을 한다는 얘기인데, 그런데 그건 제2법칙에서 F가 0일 때의 상황이고요. F가 0이면 a가 0이다. a가 0이라는 건 가속도가 0이니까 결국 등속 운동을 한다는 거죠. 그러면 제1법칙은 제2법칙의 특수한 사례니까, 따로 있을 필요 없는 거 아니냐, 제2법칙만 있으면 되는데 왜 제1법칙 써놨냐 이런 문제였죠. 당시에는 되게 기발한 문제라 생각해 가지고 한참 고민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그런 질문들이 알고보면 과학철학, 특히 물리철학의 문제였어요. 하여튼 ‘과학철학’이란 걸 대학원에서 공부해볼까 마음먹는 순간, 과거의 그런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마음을 굳히게 했죠.
그런 질문들 중에는 물리학의 기본 개념에 관한 질문도 있었어요. 예를 들어, 도대체 힘은 뭐고 질량은 뭐냐고 물어보면, F=ma를 이용해 이런 식으로 답할 수 있죠. 어떤 물체(m)를 가속(a)시키는 어떤 원인, 물체의 운동을 변화시키는 원인이 바로 힘이다. 그럼 질량은 뭐냐고 물어보면 어떻게 답할 거냐. 이것도 F=ma를 이항한 m=F/a를 이용해, 질량이란 힘에 대한 관성량이다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질량이 크다고 하는 거는 힘을 가했을 때 운동 변화가 작은 애다. 질량이 작다는 건 무슨 뜻이냐. 힘을 가했을 때 운동 변화가 크다는 거다. 근데 이렇게 얘기하면 질량을 힘에 대한 관성량으로 이해하고, 힘을 운동 변화의 원인이라고 이해하는 건데, 사실 순환논증이거든요. F=ma에서 뭘 좌변에 두느냐에 따르는 거죠. 그러면 이 법칙은 경험적으로 애초에 입증이 불가능한 가정 아닌가 하는 식의 생각을 고등학교 때부터 했었는데, 이런 게 과학철학에서 계속 등장해요. 그래서 내가 고민하는 걸 여기서 공부하면 되구나, 내 관심들을 여기서 해결할 수 있구나 하는 걸 깨달았죠.
인터뷰어 | 공부를 하면서 재밌었거나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정동욱 교수 | 기본적으로 맨날 술만 마셨죠.(웃음) 한 10시만 되면, 학교 근처에서 자취해서 살았으니까, 대체로 기숙사에 사는 친구나 거기서 자취하는 친구들 중심으로, 늦게까지 공부하고 있다가, 연구실 돌면서 한 잔 할 사람 모아 가지고 가서 맨날 술 마시고 그랬습니다. 과학철학 말고도 과학사 수업을 많이 들었죠. 기술사 수업도 듣고, 물리학사 수업도 듣고, 여성과 과학기술도 듣고. 그런데 철학 수업을 너무 안 들어 가지고 철학 베이스가 너무 적습니다. 결국은 뭐 과학사 하는 친구들이랑 많이 어울려 다녔고, 그래서 결국 과학사 전공의 선배와 결혼도 하게 됐습니다.(웃음)
인터뷰어 | 인생의 목표나 가장 최근에 있었던 재밌었던 일이 있으신가요?
정동욱 교수 | 주어진 거나 열심히 하면서 좀 이렇게 어떻게든 사고 안 치면서 하루하루를 지내는 게 목표라고 할까요. 제가 항상 닥치면 일을 하는 타입이라, 민폐 끼칠 가능성이 상당히 있거든요. 최근에 재밌었던 일은 잘 모르겠네요. 강의 준비하는 거는 재밌었던 거 같아요. 새로운 강의 주제들로, 서양근세철학사 준비했던 것도 재밌었던 것 같고, 문화철학 준비하는 것도 재밌었던 것 같고. 이미 했던 강의 다시 하는 것보다 새로운 강의 준비하는 게 힘은 들더라도 오히려 재밌더라고요.
인터뷰어 | 그래도 어떤 태도로 살아가겠다거나 하는 마음가짐이라거나.
정동욱 교수 | 제가 생각하기에 교수로 산다는 건 일종의 엔터테이너랑 비슷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가수나 배우와 마찬가지로 교수도 학생들 또는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걸로 먹고 사는 거죠. 이게 사실은 유물론적으로 생각해 보면... 대학교수인 제가 직접적으로 생산하는 게 아니니까, 결국 누군가 생산한 걸 제가 어떻게든 같이 얻어먹고 사는 셈이잖아요. 즉 저에게 뭔가 도움을 받고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들이 지불하는 돈이 돌다가 결국 제 월급으로 들어오는 건데, 그럼 도대체 저에게 돈을 받을 만한 자격이 도대체 뭐냐 생각해 보면, 일차적으로는 수강생이나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다만 가수나 배우랑 다른 점은, 이제 즐거움의 종류가 지적 즐거움인 거고, 그게 장기적으로 보면, 아까 얘기했던 과학에 대한 뭔가 균형 잡힌 시각들을 가지고 살 수 있게 도움이 된다거나 뭐 그런 게 되면 좋겠다는 거죠. 그러니까 밥 벌어먹을 자격을 갖추기 위해 학생들에게 세계의 진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재미는 줘야 하지 않겠나 생각하며 살고 있다는 거예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