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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학번 표지희 학생의 2025학년도 인문대학 학생 학술문예작품 콘텐츠 부문 대상 수상작입니다.창작자의 작품 설명도 함께 첨부하오니, 많은 시청과 관심 부탁드립니다!「제가 이 작품을 만들게 된 이유는, 눈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마음의 상태와 변화를 비유적으로 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무의미하게 눈을 치우듯 하루를 살아가며, 어느 순간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잊어버리곤 합니다. 그러다 문득 반짝이는 별처럼 작은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지만,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힐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 벽이 곧 고립된 생각, 닫힌 마음, 우울의 굴레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잠시 멈추어 곰곰이 자신을 돌아보고, 용기를 내어 그 벽을 깨뜨렸을 때 비로소 알게 됩니다. 내가 머물러 있던 세계가 스노우볼처럼 한정된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이 작품은 바로 그 순간을 담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누구나 갇힐 수 있지만, 동시에 누구나 다시 자신을 찾아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
자세히보기「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가려진 것에서 의미를 찾는 것도 좋아합니다.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각자의 생각을 말해주세요. 그것이 이 글을 쓴 배경이자 동기입니다.」단편소설 "각자의 _"는 철학과 22학번 이서형 학생의 작품으로, 2025학년도 인문대학 학생 학술문예작품 소설 부문 최우수상 수상작입니다.더 많은 독자들과 만날 수 있도록, 저자의 허락을 받아 학과소식 게시판에 공유합니다. 작가의 의도대로, 다양한 의미를 찾고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각자의 _이서형 (철학과 22학번) #1 눈을 감았다 뜬다. 잘못 보고 있는 건 아닐까? 공중에 선글라스가 떠 있다. 오직 선글라스만. 뒷걸음질로 거리를 둔다. 어떤 윤곽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 몸이 있어야 하는 위치에 아무것도 없다. 차가 지나가고, 다음 수업을 위해 빠르게 길을 걷는 사람들이 전부 보인다. 선글라스가 있는 쪽으로 손을 뻗으면 말랑한 것이 느껴진다. 내 손은 허공을 만지고 있지만, 허공을 만지는 느낌이 아니다. 물론 그래도, 이질적인 것은 내 눈앞의 선글라스뿐이다. 선글라스가 말한다. “나야.” ……‘나’가 누군데? 오해는 금방 풀렸다. 과정은 좀 험난했다. 일단 선글라스가 왜 공중에 떠 있는지 앞, 뒤, 왼쪽, 오른쪽, 위, 아래를 전부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나를 향해 “나야.”라고 말하는 선글라스에 내가 정상이 아니거나 선글라스가 정상이 아닌 것 같아서 도망쳤다. 그야, 무섭지 않은가? 평범한 선글라스가 공중에 떠 있다는 것은. 만약 자아가 있다고 하더라도 선글라스는 멋쟁이들의 상징이 아닌가. 나는 그런 멋쟁이들과 맞지 않았다. 어울려서 좋을 게 없었다. 내가 도망치기 시작하자 선글라스는 나를 쫓아왔다. 허공에서 선글라스가 위아래로 움직인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뛰는 나를 바라보는 것 같지만 도움을 주거나 하는 사람은 없었다. 각박한 사람들이다. 한참을 달린 결과, 선글라스는 다시 내 눈앞으로 왔다. 결국 선글라스가 무엇인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숨을 고르며 자리에 멈췄다. “그래요. 들을게요. 이야기해보세요.” “내가 보여?” “그러면 안 보이겠어요? 아니, 이걸 보인다고 해야 하나.” 일단 선글라스는 보이니까 그렇다고 해두자. “그래서 누구신데요?” “치마.” 선글라스에 이어서는 치마다. 황당하다. 그런 내 표정을 본 것인지 선글라스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치마. 부츠. 원피스. 가발. 축제. 무지개.” “전혀 모르겠는데……. 좋아하는 거 말하기?” “손. 내 손이 예쁘다고 했잖아.” 내 가방에 달린 무지개 열쇠고리가 움직인다. 선글라스가 건드린 건가. 열쇠고리로 시선이 간다. 손이 예쁘다고 말했고, 무지개 열쇠고리는 분명……. “너 태이야?” “응.” 눈앞의 이 선글라스는 시답잖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던 대학 동기였다.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투명 인간’이라는 형태가 된 것 같다고 한다. 옷을 다 입는 순간 옷들도 투명하게 보인다고. 절대로 다 벗고 있는 게 아니라고 관심 없는 해명을 한다. 짐이나 스마트폰은 손에 들면 보이긴 하지만, 주머니 위치에 넣는 순간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항상 볼 수 있는 건 오직 선글라스뿐이다. 움직이는 데에 문제도 없고 오감도 정상 기능을 한다. 단 하나의 문제라고 할 게 있다면……. “네 이름을 말할 수 없다고?” “응. 글로 적는 건 가능한데, 말은 할 수가 없더라. 왜지?” 펜과 수첩이 공중에서 글자를 적는다. 정태이. 깔끔한 글씨가 수첩에 적힌다. 선글라스는 수첩을 보는 듯하다가 정면을 본다. 선글라스에 약간씩 움직임이 보인다. 말을 하는 것 같지만 나오는 소리는 없다. “이제 어쩌면 좋지? 왜 이렇게 된 걸까?” “이런 상상을 많이 했어? SNS 많이 보잖아. 상상력이 자극되어서 현실이 된. 뭐 그런 거지.” “논리적 비약이야. 그럴 리 없잖아.” ‘만약 친구가 바퀴벌레가 되면 어떻게 할 거야?’, ‘1억 받고 지금처럼 살래, 아니면 원하는 과거로 돌아갈래?’ 이런 질문들은 SNS에서 조회 수와 댓글을 모으기 좋은 게시물이다. 누구나 댓글로 상대를 언급하며 질문하고 답하며, 평상시 대화 주제로 사용하기도 한다. 작게나마 상대에 관해 알 수 있는 질문들. 그러고 보면 태이에게 ‘투명 인간이 되면 뭘 할 거야?’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답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야, 나에게 그런 질문들은 깊게 생각하고 질문하는 것도, 답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자기소개할 일이 없어서 다행이네. 조만간 해결되겠지. 이제 어떻게 할 건지부터 생각해.” 생활에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어째서인지 투명 인간으로 보이는 건 나와 태이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태이가 그대로 보이는 듯하였고. 왜 우리에게만 이렇게 보이는 것인지……. 이유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찾아보기로 했다. 시간을 보니 곧 수업 시간이었다. 대화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태이에게 말하니 선글라스가 나를 보고, 아래를 보고, 다시 나를 본다. 고개를 끄덕인 것 같다. “필요하면 연락해.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인터넷 검색이라도 해야겠어. 잘 가.”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 뒤 수업에 간다. 태이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손을 움직이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 보이지 않지만. 수업에 가며 생각했다. 태이는 왜 투명 인간이 되었을까? 왜 우리에게만 투명한 모습으로 보이는 걸까. 그리고 왜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걸까. 이유는 모르겠다. 문득 뒤를 돌아 태이와 헤어진 곳을 바라보지만, 그곳에는 더 이상 선글라스도 떠 있지 않았다. 무엇인가 어긋나는 느낌이다. #2 자취방. 태이와 공강이 겹치는 날이면 집에 초대해 시간을 보내곤 했다. 좋은 기회로 싼 가격에 넓은 거실 겸 방을 얻었다. 그래서 소파를 하나 샀었다. 하지만 소파를 소파로 쓰지 않는 것은 한국인들의 특징이니. 나는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고, 태이는 소파 아래에 기대어 앉아 스마트폰을 본다. 그게 우리의 일상이다. 재밌어 보이는 영상이 있으면 태이에게 보여주고, 귀여운 동물 사진이 있으면 또 태이에게 보여준다. 예쁜 사람들이나 예쁜 옷들도. 양자택일 문제는 물론 학교 근처 맛집 정보까지. 태이는 귀찮은 기색 없이 다 받아줬고,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보다 더 열정적으로 말했다. 그렇게 SNS를 빠르게 넘기다 한 게시물에 멈춰 섰다. 그대로 몸을 돌려 태이에게 또 스마트폰을 보여준다. 푸른색 긴 머리가 고개를 돌린다. 스마트폰에는 ‘만약 투명 인간이 된다면?’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거 궁금해. 넌 만약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뭘 할 거야?” “보이지 않는다면? 조건을 더 줘 봐. 어떻게 안 보이는 건데? 투명 인간? 나는 내가 보이는 거야? 존재가 없는 건가?”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투명 인간이라고 하자. 덩치나 그런 건 있는데, 모두의 눈에 안 보이는?” “어렵네……. 마술을 하기에는 덩치가 있다고 하니 들킬 거고. 콘서트 제일 앞자리에서 보기?” “그거 좋은데? 갑자기 필요해졌어. 다른 건?” “모르겠네. 꼭 무언가를 해야만 하나? 투명 인간이 된 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아. 사람들 시선 없이 걷는 다거나.” 평균보다 큰 몸. 그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몸을 구겨 앉은 자세. 자취방 현관에 있는 굽 있는 기다란 부츠. 그런 부츠를 덮을 길이의 프릴이 달린 긴치마와 짧은 상의. 눈에 띄는 푸른색의 긴 머리카락 가발. 반짝이는 손톱. 영락없이 남의 옷을 입은 것 같은 행색. “그렇게 입으면 내가 입어도 지나가면서 볼 것 같은데?” 태이는 고개를 돌려 나를 똑바로 바라본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 거 알잖아.” “나도 알아. 농담한 거야.”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결국 입을 다물고 등을 돌려 다시 스마트폰을 본다. 태이도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돌린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웃긴 영상이 올라와 그걸 보여주려 몸을 다시 돌렸다. 나의 침묵은 오래가지 못했다. 영상을 보며 웃던 태이가 말을 잇는다. “뭐…… 지금도 나쁘지는 않을지도.” “아직도 생각하고 있었어?” “궁금하잖아. 이런 건 깊게 생각해봐야 해. 일단 당장은 투명 인간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어. 언젠가는 이대로도 잘 돌아다닐 수 있을 거야. ……아마도.” 태이는 우리 집에서 나갈 때 치마를 벗고 바지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긴 코트로 몸을 꽁꽁 싸맨다. 가발도 벗어 짧은 머리를 보인다. 장갑으로 손도 가린다. 어느 정도는 패션으로 보일 정도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사람. 그 속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 걸까. 오히려 투명 인간이 된 태이는 더 편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짧은 생각만 스쳐 간다. 태이와의 만남은 어떤 축제에서였다. 직접적으로 참여한 것도, 관심 있게 본 것도, 의미 있게 본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 길을 지나가는 중이었고 태이도 마찬가지였다. 무지개 깃발이 날리고 있었고 알록달록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웃으면서 행진하고 있었다. 이곳에 내가 있다고 외치는 소리들. 우리도 당신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더운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무거운 투쟁의 소리를 크게 외치지만, 그런데도 그 안에서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분명 행복한 광경이었다. “안녕하세요! 이거 제가 만든 건데 나눠드리고 있거든요. 하나 받아 가세요.” 조끼를 입은 사람이 나누어주는 열쇠고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버렸다. 문구 하나 없이 무지개가 그려져 있는 단순한 디자인이었다. 이것이 누군가에겐 의미가 있는 것이라 생각하니 조금 떨리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들었을 때 태이와 눈이 마주쳤다. 태이도 나와 같았다. 그때의 태이는 평범했다. 혹은 평범해지고 싶었거나. 하지만 열쇠고리를 들고 있는 손의 손톱은 반짝거렸다. 그래서 먼저 말을 걸어버렸다. “손이 정말 예쁘시네요.” “네……?” “아, 죄송해요. 이런 말은 실례일까요? 근데 정말 반짝거려서…….” 태이는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실수한 걸까? 다시 사과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을 참에, 태이는 열쇠고리의 포장을 뜯어 들고 있던 가방에 매달았다. “잘 어울려요?” 그 모습에 나도 포장을 뜯어 열쇠고리를 가방에 매달고 답했다. “네. 정말로요.” 우리는 한순간에 서로에 관한 수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같은 대학교에 다니는 것도, 현대인은 늘 그렇다지만 SNS를 보는 것이 유일한 휴식이라는 점, 그리고 ‘예쁘고 특별한걸’ 좋아한다는 점까지. 물론 다른 점도 있었다. 나는SNS에서 ‘좋아요’ 표시를 누르고, 예쁜 사람들이 예쁜 옷을 입은 걸 보고 ‘예쁘다’라고 말하는 행위를 좋아한다. 조금은 안 어울리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탐미하는 것이다. 나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을 보는 것이 좋았다. 자신감 있고, 당당하고, 반짝거리는 사람들. 물론 현실에서 보면 너무 멋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거리를 두게 되지만. 하지만 태이는 아니었다. 태이는 예쁘고 특별한 것들을 보면 본인이 그렇게 되고 싶어 했다. 그런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태이가 나에게 보여주는 화면들은 전부 예쁜 옷들로 가득했고, 나도 공감했다. 태이는 표정에 감정이 드러나는 사람이었다. 그걸 보여주며 나와 대화하는 태이는 즐거워 보였다. 어느 날. 태이가 자취방에 택배 봉투를 들고 들어왔다. 택배는 밖에 놓고 가니까 그걸 들고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태이가 긴장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말했다. “이거. ……도와줄 수 있어?” 태이가 산 건 해외 배송으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프릴이 달린 원피스였다. 가발도 들어있었다. 질은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판매 이미지와 뭐…… 거의 똑같았다. 나는 긍정의 의미로 바로 몸을 돌렸고, 태이는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 입었어.” 태이는 등을 보이고 있었다. 등 쪽의 지퍼가 다 올라가지 않아 지퍼를 올려주고, 작은 가위로 튀어나온 실밥을 정리했다. 태이에게 가발을 씌운 뒤 집에 있는 고대기를 약하게 켜 웨이브를 넣어주고, 화장품으로 적당히 화장도 해 줬다. 태이는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몸도 떨리고 있었다. 손톱이 반짝거렸다. 이렇게 긴장할 것도 없는데. 그런 태이 앞에 전신거울을 세우고 태이를 천천히 일으켰다. “눈 떠 봐.” “……괜찮을까?” 어깨를 으쓱였다. 느껴졌을까? 나는 괜찮다고 말할 수 없었다. 내가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 않을까. 빛이 강하면 더 괜찮으려나? 그런 생각만 하며 괜히 전등을 밝게 한다. “직접 보면 되지.” 태이가 천천히 눈을 뜨고 거울을 본다. 놀란 얼굴이 눈에 보인다. 한참을 거울을 빤히 바라보던 태이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좋아?” “내가 아닌 것 같아…….” 그렇게 말하며 거울을 짚고 본인을 바라보는 태이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걸로 충분했다. 태이가 좋아하니 나도 좋았다. 투명 인간이 된 태이와는 길을 가다 종종 마주쳤다. 사실 마주치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혹은 마주쳤는데도 모르고 지나갔다거나. 선글라스만 공중에 떠다니는 것이 흔히 있는 일은 아니지만, 스마트폰을 보며 걸어 다닐 때는 자주 놓치곤 한다. 그때마다 태이가 먼저 인사를 해줘서 알게 된다. 태이는 투명 인간 생활에 적응한 것 같았다. 교수님과도 편하게 대화하는 것 같았고, 학생들이랑 밥도 먹고 사람들과 잘 다녔다. 나와 다닐 때보다 더욱 편한 것처럼.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들과 하는 대화는 자연스러웠고 아마도 웃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행이었다. 그렇다고 나와의 연락이 끊기지는 않았다. 자주 연락하고, 자주 만났다. 시답잖은 이야기는 물론 귀여운 동물 영상을 보내거나 약속을 잡고 밥을 먹기도 했다. 선글라스만 있는 상황에서 공중에 떠 있는 수저나 포크를 보며 밥을 먹는 게 익숙하진 않았지만,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계속 먹었다.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공강에 태이는 자취방에 오지 않게 되었지만 그만큼 바쁜 일이 많겠지, 생각했다. 약속을 많이 잡았다거나. 투명 인간이 되고서야 사람들과 친해진다니. 원래도 친한 사람이 있긴 했겠지만, 그 빈도가 워낙 늘어났다. 뭐가 그렇게 문제였던 걸까. 그렇게 중간고사 기간이 지나고서야 자취방에 와도 되냐는 연락을 받았다. 흔쾌히 수락했다. 자취방의 벨이 울려 문을 열어줬다. 선글라스가 눈앞에 떠 있었다. 들어오라는 얘기를 마친 뒤 나는 바로 소파에 가서 누웠다. 태이는 천천히 자취방으로 들어와 내가 누워 있는 소파 앞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태이를 바라봤지만, 선글라스는 그대로였다. 혹시나 해 다리를 치우자 소파가 푹 꺼지는 게 느껴졌다. 태이가 소파에 앉았다. 결국 나도 소파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했다. 태이도 스마트폰을 보듯 공중에 스마트폰이 떠 있다. 그대로 시간이 흐른다. 조용하다. 옛날에는 침묵이 어색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아닌 것 같다. 태이가 보이지 않아서 그런 걸까? 투명 인간이어서 옷을 갈아입어도 티가 나지 않는다. 그런 과정이 없으니까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각자의 스마트폰만 바라보다가,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언제까지 투명 인간인 채로 있는 걸까?” “그러게…….” 태이는 여전히 스마트폰만 보고 있다. 괜히 어깨가 있는 쪽을 툭툭 친다. “벌써 포기한 거야? 돌아올 방법이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 “그래야지. 그런데, 이대로도 괜찮을 것 같아.” 해결을 위한 방법을 찾는다고 했으면서 귀찮아 찾아보지 않았지만, 태이가 쉽게 포기한 것 같아 내가 다 걱정이었다. 이렇게만 있으면 불편하지 않나? “왜? 네 모습을 볼 수 없잖아. 제일 중요한 문제 아니야?”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 문제 없으니까. 매일 씻고, 준비하고, 옷을 입고……. 그렇게 생활을 할 수 있으니까.” 목소리가 잠겨있다. 투명 인간이 아닌 태이는 지금보다 소심했다. 좋아하는 옷을 입으면서도 늘 긴 코트로 감췄다. 당당한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나와 함께 있을 때만 좋아하는 옷을 입고 시간을 보냈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조금만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긴 했었다. 그래도 투명 인간보다는 평범한 인간이길 원했던 것 같은데. 어쩌다가 마음이 바뀐 걸까. 아무도 자기에게 뭐라 하지 않아서? 뭐라고 한 사람은 있었나? “물론, 다시 보이게 되면 마음이 바뀔 수도 있지. 하지만 나는 지금으로도 만족하고 있어.” “네가 그렇다면 할 말은 없지만…….” 난 네 손이 기억나지 않는데. 다시 침묵. 결국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스크롤을 내리다가 전에 저장해 둔 게시물이 보인다. 태이가 좋아할 것 같아서 저장해둔 거였다. 태이 앞으로 스마트폰을 들이민다. “맞다. 이거 봐. 최근에 찾은 계정인데,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저장해뒀어. 어때?” “응. 예쁘네.” “링크 보내줄게. 나중에 더 봐.” “고마워.” 그게 다야?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왜 초조한 마음이 드는 걸까. 대화는 계속 이런 식이었다. 태이가 왜 온 건지도 잘 모르겠다. 저녁은 먹겠다고 해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지만 태이와의 자리가 불편했다. 태이는 신경 쓰지 않는 걸까? 음식에 고개를 박은 채 열심히 먹었다. 밥을 다 먹은 태이는 금방 돌아갔다. 밥을 먹으면서 태이가 먼저 말을 건네기도 하고, 대화를 이어가기도 했는데 뚝뚝 끊겼다. 나한테 화난 게 있는 걸까, 싶다가도 전혀 예상이 가지 않았다. 태이와 헤어지기 전, 이번에도 먼저 말을 꺼냈다. “요즘 어떻게 지내?” 답은 돌아오지 않았고, 문은 닫혔다. #3 그런 일이 있긴 했지만, 연락은 계속했다. 그날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로 태이는 공강 시간에 놀러 와 나와 시간을 보냈다. 즐거웠다. 주말에도 태이를 불러서 시간을 보냈다. 몇 시간을 내리 같이 있다가 집에 가겠다는 태이를 배웅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마침 생필품이 떨어져 쇼핑도 할 겸 가방을 들었다. 둘이서 길을 걸었다. 그때, 태이가 말했다. “할 말이 있어.” 왜 이렇게 무겁게 말을 꺼내는 건지. 선글라스와 마주 보는 건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어서 태이가 원래대로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선글라스는 나를 똑바로 마주하고 있었다. 괜히 시선을 돌린다. 팔에서 감각이 느껴졌다. 태이가 날 붙잡고 있다는 의미다. 집으로 돌아가기도 뭣하고 마땅히 대화할 곳이 없어서 그냥 대학교 내부를 걷기로 했다. 쇼핑은 뒷전이 되었다. 할 말이 있다던 태이는 또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이번엔 나도 말하지 않는다. 태이를 기다린다. “너랑 친구가 되어서 좋았어.” 가벼운 고백으로 시작되는 말.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모르기에 묵묵히 듣기만 한다. “옛날에는…….” 태이를 본다. 눈이 있을 위치인 선글라스를 바라본다. “내가 이 세상에 있다고 외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거든. 그래서 포기하고 싶었어. 주어진 대로만 살아가면 편할 거라고.” “주어진 대로만 살아가면 편하긴 하지. 원래 그렇잖아. 남들 다 똑같이 하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대학교까지. 참 꽉 막힌 세상이라니까.”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이런 깊은 내용을 원하는 게 아니다. 나는 태이가 하고 싶은 말과는 어긋나는 말을 꺼낸다. 단순한 내용이다. 사람들이 다 틀에 박힌 것처럼 살고 있다는 건. 태이가 좋아하는 것에 관해서는 잘 알고 있다. 그걸로 고민하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항상 태이를 응원했다. 용기가 없는 쪽은 태이였고, 긴 코트로 자신을 감추는 태이를 못마땅해했다. 좋아하는 걸 하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조차도 나를 색안경을 쓰고 바라봤던 걸지도 몰라.” 선글라스가 위아래로 움직인다. 선글라스를 만진 걸까. 다시 소리는 사라진다. 말을 고르는 듯 선글라스가 앞으로 움직이는 속도가 느려진다. “여전히 뭐가 정답인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편해지고 싶어. 지금이 너무 편해.” 선글라스가 멈춘다. 나를 보지 않고 앞만 보고 있던 선글라스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너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다가온 나의 무지에 대한 언급. 확 열이 오른다. 내가 왜 이런 그런 말을 들어야 하지? 최근 들어 나를 거부하던 건 너였다. 항상 너를 이해하는 건 나였다. 그런데 왜? 태이가 어떤 이유로 물어보는지 모르니까, 일단은 침착하게 되묻는다. “내가 뭘 모르는데?” “네 집에서 처음으로 싸구려 옷을 입고 맞지 않는 가발을 썼을 때……. 거울을 보며 제일 먼저 한 생각이 있어.” 선글라스는 담담히 이어 말한다. “역시, 안 어울리잖아.” 당연했다. 싸구려 옷이었고 싸구려 가발이었다. 하지만 너는 ‘내가 아닌 것 같다’라고 했잖아. 좋다는 의미 아니야? 그리고 네 표정은 분명 기뻐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네 표정. 너는 못 봤지?”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지? 거울 앞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했지? “그래서 싫었다는 거야? 거짓말을 해서? 안 좋은 표정을 지어서? 그런 의미가 아닌 거 알잖아. 기억도 안 나는데…….” 과거의 이야기를 끌어오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바보같이 나만 좋다고, 좋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배신감이 든다. 억울하기도 하다. “네가 기뻐하는 걸 보면 좋았어. 네가 하고 싶은 걸 해주고 싶었고. 솔직히 너도 알잖아. 그건……. 나처럼 널 이해하는 사람도 없을 텐데.” “내 마음을 함부로 말하지 마.” 싸우고 싶지 않았다. 이런 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잖아. 잘 묻어두고 있었잖아. “갑자기 왜 그래?” “이제는 네가 알았으면 해서. 그날 이후로 너는 나를 어떻게 봤어?” 그 후로 넌 어떤 옷을 입었지? 어떤 옷을 입고 내 곁에 앉아 있었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때 어떤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어? 내 앞에서 말하는 너는, 지금 어떤 표정이야? “알 것 같아?” 네가 나열하는 단어들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하고, 언제나 내 기준에서 멋대로 행동하고. 누구보다 가볍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내뱉는……. 나는 뭘까. 나는 누구인 걸까. “……넌 누구야.” “난……” 이름을 말할 수 없다고 했잖아. 지금도 그래야 하는 거잖아. 나랑 지내던 너는……. “정태이.” 선글라스가 사라진다. 벗은 것일까, 혹은 그것조차 보이지 않게 된 것일까. 너는 지금 내 앞에 있을까, 아니면 이 자리에서 떠났을까. 끝난 관계에 덧붙일 말은 없다. 열쇠고리가 흔들린다. 동시에,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 말을 내뱉는다. “겁쟁이.” 너는 여태 무슨 옷을 입고 있었어?
자세히보기지난 11/5 수요일에는 인문학 인턴십 연구 포스터와 학술문예작품 공모전 수상자 시상식이 진행되었습니다. 학술문예작품 공모전은 학생들의 체계적인 사고력 및 전공분야 지식에 대한 표현기법과 구사능력 증진을 위해 매년 개최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철학과에는 학술문예작품 공모전에서 뛰어난 두각을 드러낸 학생들이 많았는데요. 먼저 25학번 표지희 학생이 '눈사람'(콘텐츠)이라는 작품으로 영예의 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22학번 이서형 학생은 '각자의 _'(단편소설)이라는 작품으로 최우수상을 수상하였습니다. 22학번 김수연 학생은 '풍등'(콘텐츠)이라는 작품으로 장려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수상한 학생들 모두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자세히보기인문대에서 11/3(월)~11/5(수) 3일 동안 인문주간을 개최합니다. 인문광장에 인문학 분야 연구역량 강화 및 학문후속세대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인 인문학 인턴십의 연구결과 포스터 20개가 전시된다고 합니다. 누구나 현장에서 모바일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하니 학생들의 공모작에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여러분의 소중한 한 표를 던져주세요!
자세히보기철학과 대학원 「젊은 개척연구자의 날」 우수 논문상 수상 수상내역제27회 - 우수상: 김광영(박사수료), 『성경해석학에 대한 이해와 적용: 마르틴부버와 가다머를 중심으로』제28회 - 최우수상: 문성균(박사수료), 『생명체의 '환경'(milieu)과 들뢰즈의 '문제' 개념』 - 개척자상: 정주혜(박사수료), 『프로이트-라캉 정신분석학에 대한 뤼스 이리가레의 비판적 독해』 - 개척자상: 이주희(박사수료), 『팬데믹 시대와 탈인간중심주의에 대한 고찰 - 하이데거의 시인론을 중심으로- 』제30회 - 최우수상: 문성균(박사수료), 『괴물의 생물학과 차이의 존재론』 - 우수상: 박대윤(박사수료), 『흄에게 있어서 구성된 주체와 주체화의 문제』제31회 - 우수상: 안병도(박사수료), 『요가 철학에서의 심(vitarka)과 사(vicāra)』제32회 - 우수상: 임미경(박사수료), 『반복의 연극: 들뢰즈와 샌포드 마이즈너 비교 연구』
자세히보기들뢰즈랩 홈페이지(연구소 소식)철학과에서는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들뢰즈의 철학을 다양한 방식으로 알리고,새로운 사유를 함께 공유하는 행사를 진행하오니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자세히보기2025년 9월 26일, 인문대 아카데미홀에서 철학과 졸업예정자들의 졸업 논문 발표회가 열렸습니다.이번 발표회는 철학과 학생들이 학부 과정 동안 탐구해온 철학적 문제 의식과 성과를 공유하는 자리로, 다채롭고 수준 높은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정동욱 교수님의 개회사로 시작된 발표회는 AI, 빅데이터, 사랑, 죽음, 존재, 도덕성, 안락사 등 현대 사회와 인간의 삶을 깊이 있게 성찰한 다양한 주제들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특히, 발표자들은 교수님들과 재학생들의 질의응답에도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며 그간 쌓아온 철학적 사고의 깊이를 증명했습니다. 이날 발표자 중 탁월한 발표를 보여준 학생들에게는 심사를 거쳐 논문 우수 발표자상이 수여되었습니다. 수상자는 다음과 같습니다.최우수상(1등): 조은솔 「'신, 자유, 타자' - 죽음의 권리에 관하여」우수상(2등): 이수나 「짜르바까의 유물론」장려상(3등): 윤서영 「AI 창작물의 권리와 윤리의 철학적 탐구」수상자들에게는 상금과 함께 철학과장상이 수여될 예정입니다.이번 졸업논문발표회는 단순한 평가의 자리를 넘어, 철학적 사고를 통해 인간과 세계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자 하는 학부생들의 진지한 고민이 고스란히 담긴 시간이었습니다. ♥♥♥♥ 철학과 교수님들 ♥♥♥♥
자세히보기지난 9월 19일, 철학과 Job Day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선배와 함께하는 진로특강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특강에는 박영준(이뉴스투데이 기자, 10학번) 선배와 박현빈(서울교통공사 주임, 16학번) 선배께서 참여해주셨습니다. 박영준(이뉴스투데이 기자, 10학번) 선배는 경상남도 취재부장의 역할과 기자생활의 경험을 나누어 주셨으며, 기자로서의 업무뿐만 아니라 20대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20대는 자신을 탐색하고, 실패와 도전을 통해 성장하는 시기"라며 누구도 침범하지 못할 단단한 내면의 힘을 쌓아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박현빈(서울교통공사 주임, 16학번) 선배는 공기업의 실제 직무 환경과 공기업 채용 절차 전반에 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NCS 필기시험, 자기소개서 작성, 면접전형 등 공기업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에게 큰 도움이 되는 실무적인 내용을 기반으로 다양한 경험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번 철학과 Job Day 진로특강은 현직에서 활동 중인 선배들의 조언을 통해 철학 전공의 다양한 진로 가능성을 새롭게 조명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철학과에서는 학생들의 주체적인 진로 설정에 도움을 주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속해 나갈 예정입니다!
자세히보기2026학년도 대학 신입생 수시모집에서 경상국립대 철학과는 21명 모집에 181명의 지원을 받아 평균 경쟁률 8.62:1을 기록했습니다. 철학과의 경쟁률은 매년 조금씩 높아지는 추세로, 올해는 인문대학 10개 학과 가운데 가장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경상국립대 철학과에 관심을 보인 모든 지원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전형별 경쟁률교과(일반) : 107 / 11 (9.73)종합(일반) : 47 / 5 (9.40)종합(지역) : 20 / 4 (5.00)종합(사회) : 7 / 1 (7.00)종합(기초) : 7 / 2 (3.50)종합(농어촌) : 3 / 1 (3.00)학생부종합전형 1단계 합격자 발표일은 11월 14일이며, 최종 합격자 발표일은 12월 12일입니다.
자세히보기대학 지성 In&Out http://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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