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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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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재(山天齋)

소재지경남 산청군 시천면 사리(慶南 山淸郡 矢川面 絲里)

건물양식사진참조

건립연대: 1561(420여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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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재(山天齋)의 유래

산천재는 남명 조식선생이 만년(晩年 61세-72세까지11년간)에 

학문과 인격확립된 정신과 경륜을 고스란히 후학들에게 전해 인간교육수양의 도장(道場)이다.

산천재란 이름은 주역대축괘(周易大畜卦)에서 따온 것이다

대축괘(大畜卦)는 상간하건(上艮下乾)으로 이루어졌는데

()은 산()이요()은 천()이니 산천(山天)은 바로 간건(艮乾)의 형명(形名)인것이다

(교육후생敎育後生) (보은천지報恩天地)이제까지 배운 지식과 인격을 실제로 행하며더욱 그 덕을 축적 일생을 하여 마무리 지었던 것이다.

과연 남명의 만년은 그 재호(齋號)대로 여기서 대성하고 완인(完人)이 되었으니 산천재는 우리나라 유학교육이 성공한 하나의 본보기가 되었다.

남명 일생 최후최고(最後最高)의 빛을 발한 때가 바로 이 산천재 시절이며 

그의 회광반조(回光返照)는 길게 조선 선비들에게 하나의 커다란 불기둥이 되어 앞길을 밝혀주는 작용을 했다.

그러므로 산천재는 바로 조선 선비들의 불식(不熄)하는 활화산이었던 것이다


사적(史蹟)으로서의 의의

산천재는 남명선생이 만년에 강학하던 곳이다.

비록 큰 서원이나 향교국학에 비할 바는 못되나조선이 가장 어려웠던 선조 때의 국사와 국난을 타개한 인물들이 길러졌으니 인재교육의 전형이다.

특히 임진왜란(壬辰倭亂)을 당해서 일어난 의병장들이 여기서 가르친 인재속에서 많이 나왔으므로 교훈을 남겨 준다.

이 산천재에서 남명이 학생들을 가르친 교육철학의 요체는 경()과 의().

이는 조선유학교육 중에서 좀 빈약했던 행동면을 중시한 것으로 산천재는 바로 행동철학의 발상지이다.




최근 업데이트 일시 : 2022/09/26 15:2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