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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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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재실(如在室)

소재지경남 산청군 시천면 사륜동(慶南 山淸郡 矢川面 絲綸洞)

건물양식사진참조

건립연대: 1572(410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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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재실(如在室)의 유래

여재실(如在室)은 남명 조식선생의 가묘(家廟)이다.

남명선생의 묘소가 있는 산록 아래 산천재(山天齋)뒤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금 남아있는 건물로는 가장 오래되었다.

여재(如在)란 논어(論語)』「팔일(八佾)」편의 ‘祭如在 祭神如神在’에서 나온 말로 '제사지낼 적에 마치 자기 조상에게 제사지내는 것처럼 제사지낸다'고 한 말을 따다가 이름한 것으로 남명 조식선생의 신위를 모시고 춘추로 제향을 올리는 곳이다.

옛날부터 인생이 세상에서 살다가 남기고 간 것 중에 영원히 썩지 않는 것을 셋 들고 있는데··(德言功)이 그것이다.남명선생은 도덕군자로서 덕을 갖추고 대학자로서 학을 이루었으며제자들을 길러 국가동량지재(國家棟樑之材)로 만들었고직절강개(直截慷慨)한 언론을 발하여 나약한 선비를 부기(扶起)하고 완악한 관리를 청렴케 하였으니 그 공 또한 적다할 수 없다.

··(德言功)중에 하나만 있어도 만민(萬民)이 오래도록 향화(香火)를 받드는 것이 고금의 긍식(矜式)이다하물며 덕··(德言功) 삼불후(三不朽)를 모 두 갖춘 분에 대해서랴!

그러므로 여재실이 비록 조씨(曺氏)들의 가묘(家廟)이나 이는 누구나가 참배할 수 있게 개방되어 마땅하다.


사적(史蹟)으로서의 의의

사적이란 이미 지난 역사의 진적(陳跡)으로 현재에서 왕사(往事)를 회고하는 대상에 불과한 것이지만여재실은 하나의 가묘(家廟)로서 자취라기 보다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실재이므로 사실상 사적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의식이 항상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사물도 영원한 것은 없으므로 여재실의 건물은 보수를 요하는 사적임에 틀림없고그것이 잘 보수되고 보전될 때대현을 제향하는 의식도 새로워지는 것이다.

옛날 대현을 모시는 가묘(家廟)가 어떠한가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보여 줄 필요도 있고향현(享賢)의 의의를 되살려 인간교육의 근본이 되는 심성을 맑게 하는데 산 교육의 자료로서 의미 있는 곳이다.




최근 업데이트 일시 : 2022/09/26 15:31:32